음악과 홍차 – 2017년 4월 18일

철관음에 레몬 한 편을 넣었더니 맛이 영 애매해졌다. 구수한 우롱차에 레몬 조합은 잘 안어울리는 듯

어제 Ave verum corpus라는 ‘위안’의 음악을 들어서 그런가, 오늘도 영혼을 쓰다듬는 음악이 듣고 싶어졌다.

어떤 곡이 있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많이 유명하진 않지만 참으로 명곡인 또 하나의 종교곡에서 골라본다.

Vespere Solennes K.339 중 Laudate Dominum

 

20세기 신학자 칼바르트는 모차르트에 경도되어 하루도 빠짐 없이 모차르트만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Whether the angels play only Bach praising God, I am not quite sure. I am sure, however, that en famille they play Mozart.

신을 경배하기 위해 천사들이 바흐만 연주할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천사들이 편하게 모여서 연주할때는 모차르트를 연주할 것이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

결코 바흐를 폄하하자는 것도 아니고, 바흐를 폄하하는 내용도 아니다.

그는 결코 ‘강요’하지 않는다. 전 인류여 손에 손을 잡고 희망찬 미래로 나아갑시다 라는 식으로 결코 강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음악을 듣다보면 절로 손에 손을 잡고 희망을 꿈꾸고 있음을 본다.

본 곡은 아니지만 비슷한 느낌을 받게 하는 영화 중 한 장면을 담아본다.

워낙 유명한 영화이고, 유명한 장면이라 잘 알 것이다. ‘쇼생크 탈출’에서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K.492)중 이중창.

그때 모건 프리먼의 독백이 참으로 마음에 와 닿는다.

그 이탈리아 여자들이 무엇에 대해 노래 했는지 난 지금도 모른다

사실은, 알고 싶지도 않다.

말 안하고 두는게 더 좋을 때도 있는 법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래서 가슴 에이게 하는

어떤 아름다운 것에 대해  노래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자리의 누군가 꿈꿀 수 있는 것보다

그 음악은 더 높이 더 멀리 울려퍼졌다

마치 아름다운 새들이 새장에서 뛰쳐나와

날개짓을 하며 순식간에 벽을 넘어가는 느낌.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쇼생크의 모든 사람들은 자유를 느꼈다.

 

청년들이 교회에 모여 자유롭게 Laudate Dominum을 부를 때 신도 기꺼이 경청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의 음악을 들으며 오늘도 자유를 느끼고 위안을 얻는다.

I Like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