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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좋은 이유 (감 예찬)

겨울은 좋아하는 계절이기도 하고, 좋아하지 않는 계절이기도 하다.

물론 겨울만 그런 것은 아니고, 봄, 여름, 가을 모두 좋은 이유도,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다 있다.

만물이 움츠러드는 겨울에는 모순되게도 풍성함이 느껴진다.

나의 조상분들이 이 소리를 들으면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호통을 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요즘 우리나라는 먹고사는 문제에 있어서는 단군 이래로 가장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을 것이다.

예전 기록을 봐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엄청난 식사량을 자랑했다고 한다. (참고자료1, 참고자료2)

전에 쓴 것처럼 나는 과일을 좋아한다.

달콤한 딸기도 좋아하고, 새콤한 사과도 좋아하고, 시원한 수박, 배, 몸넘김이 짜릿한 포도도 좋아한다. 사실 안좋아하는 과일이 없다.

그 중에서 겨울을 풍성하게 하는 겨울 대표 과일이 있다. 바로 귤과 감이다.

겨울은 과일과는 어울리지 않는 계절일 것이나 귤과 감은 겨울에 제대로 접할 수 있고, 겨울에만 제맛을 느낄 수 있다.

어렸을 적에 긴긴 동지밤에 궤짝에 가득 담긴 귤을 하나둘씩 꺼내 까 먹은 기억이 있다. 귤은 내게 달콤하기도 하고 새콤하기도 한 과일이나 달콤함보다는 새콤함의 느낌이 더 강하다. 값도 부담없고 먹기도 수월하여 귤을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귤 외에 내게 겨울을 대표하는 과일은 감이다.

단감, 연시 (홍시), 대봉, 곶감 등 감은 한철 과일이기는 하지만 모양과 맛이 단조롭지 않으면서도 달콤함과 넉넉함을 안겨주는 너무도 소중한 과일이다.

어렸을 적에는 단감만 먹었다. 그 이유는 어린 내가 말랑한 홍시를 먹기는 번거로운 면이 많았고 먹고 나면 손과 얼굴에 다 묻어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내가 결코 좋아할 수 없는 과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단감도 내가 스스로 까 먹지는 않았을 것이고 할머니나 어머니께서 껍질을 까서 먹기 좋게 잘라주시면 나는 냉큼 받아먹기만 했을 것이다. 🙂

가끔 떫디떫은 감 (땡감)도 있었지만 그건 어쩌다 가끔 한 입 먹고 머리를 절레 흔들고 안먹었으니 안좋은 추억은 별로 없다.

나이가 들면서 어렸을 적과는 달리 쓴 것도 잘 먹게 되고 (커피, 술), 몸에 안 좋은 것도 하게 되니 (담배 – 이제 끊은지 8년이 되어간다) 말랑한 홍시를 까서 손과 얼굴에 묻혀 먹는 것은 전혀 귀찮은 것도 아니게 되었고 어느새인가 이제는 없어서 못먹는 그런 소중한 아이템(?)이 되어버렸다.

생감이 아닌 말린 곶감은 생감과는 또다른 멋과 맛이 있다.

바짝 마른 곶감도 오랫동안 입에 넣고 불려 먹는 재미가 있지만, 곶감의 최고봉은 살짝 마른 반건시일 것이다. 이건 정말 어쩜 그토록 맛있는지.. 꿀처럼 달고 맛있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아니 꿀보다 맛있다. 너무 맛있지만 정말 비싸서 소위 없어서 못먹는다.

일반 감을 먹는 묘미도 여러곳에 있다.

잘 익은 홍시의 껍질을 아주 얇게 잘 벗기는 것도 하나의 재미 요소이다. (벗겨? ㅋㅋㅋ)

속에 든 귀찮은 씨앗을 그냥 마구 뱉어 버리고 싶지만 그 씨앗을 감싸고 있는 부분은 감의 가장 맛있는 부분이기도 하여 그 씨앗 둘레를 혀로 잘 발라먹는 것도 솔솔한 재미이다. 가끔 이 씨앗이 그냥 꿀꺽하고 목으로 넘어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긴장감이 돌기에 이 점도 감 먹는 재미를 배가시킬 것이다. (다행히 아직 감 씨앗을 그냥 꿀꺽 삼킨 적은 없지만 언제나 긴장과 걱정이 되기도 한다.)

감에서 가장 맛있는 것은 그 섬유질이라고 해야할지 씹으면 씹히는 질감이 저걱저걱하고 느껴지는 그 속살이다.

그외에 감 껍질을 먹어야할지 말아야할지는 항상 고민이다. 물론 명확히 먹지 말아야할 감 껍질도 있지만 모호한 부분이 있다. 단단한 단감의 껍질은 떫을 수도 있어 안먹는게 좋은 경우가 많지만 단감이 말랑해지며 연시가 되어가면서는 그 껍질의 식감과 풍미가 대단하여 아주 별미로 느껴지기도 한다.

아주 말랑한 연시는 껍질을 아주 얇게 벗길 수 있고, 그 껍질은 입에 들어가면 섬유질 덩어리여서 별로 느낌이 좋지 않아 보통 벗기고 속살만 먹는다. 이 과정에서 손과 얼굴에 감의 속살이 범벅이 되는 것이다.

감의 속살을 입안 가득 듬뿍 넣고 이로 우적우적 씹으며 혀로 살살 씨앗의 살을 발라내며 먹으면 그렇게 맛있고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감을 많이 먹으면 변비가 생긴다는 말이 있던데 얼마나 많이 먹어야 그렇게 될까 싶기도 하다. 아직 감 때문에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다.

본가에 감나무가 있어 전에 갔을때 감을 잔뜩 담아왔다. 상품성은 없기에 파는 감보다 못생기고 크기도 제각각이고 익은 정도도 제각각이지만 파는 것보다 확실히 달다. 더 제대로 익혀서 먹기 때문일 것이다.

아침 식사때 보통 2개 정도를 전식으로 먹고, 저녁에 퇴근해서는 집에 오자마자 손을 씻고 감부터 한 두어개 챙겨 먹는다.

익은 정도를 손으로 만지거나 살짝 눌러봐서 이 감으로 먹을지, 저 감으로 먹을지 선택하는 순간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약간의 긴장(?)과 설레임이 함께 하는 행복한 고민의 순간이다.

매일 이렇게 여러개를 풍족하게 먹다보니 나날이 개수가 줄어드는 것이 보여 살짝 서운해지기도 하지만 아직도 꽤 풍성히 있어 그 감을 볼 때마다 살림의 넉넉함(?)이 느껴지고 그 덕에 마음까지 푸근해진다.

감 덕분에 겨울이 넉넉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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