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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파이를 만들고 싶어졌어

 

“스님, 스님께오서 곡차를 드셨으니 그 옛날 천장사에서 법문은 술기운에나 하는 법이라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지금 마침 스님께오서 곡차를 드시고 얼굴까지 단청불사 하셨으니 한 가지 묻겠습니다. 스님, 스님께오서는 이처럼 곡차를 마시지만 저는 술이 있으면 마시고 없으면 안 마십니다. 굳이 있고 없음을 따지지 않습니다.”

만공은 다시 상 위에 올려져 있는 파와 밀가루를 버무려 지진 파전 안주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파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님, 저는 굳이 파전을 먹으려 하지도 않고, 또 생기면 굳이 안먹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스님께오서는 어떻습니까.”

난데없는 질문에 경허는 대답 대신 사발에 한가득 들어 있는 곡차를 단숨에 들이켜더니 빈 잔을 만공에게 건네주어 술을 따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위대한 대사님, 곡차 한잔 받으십시오. 나는 그대가 그동안 그처럼 위대한 도인이 되었는지는 전혀 몰랐네, 그려.”

경허는 일어서서 제자 만공 앞에 갑자기 엎드려 배를 올리려 하였다. 당황해진 만공이 얼른 일어서서 스승을 만류하여 다시 자리에 앉히자 경허는 껄껄 웃으면서 말하였다.

“자네가 벌써 그런 무애(無碍)의 경지에 이르렀는지 내가 전혀 몰랐었네 그려. 나는 자네와는 다르네. 자네는 술이 있으면 마시고 없으면 안 마시고, 이 파전이 생기면 굳이 안 먹으려 하지 않고 없으면 굳이 먹으려고도 하지 않지만 나는 자네와는 다르네. 나는 술이 먹고 싶으면 제일 좋은 밀씨를 구해 밭을 갈아 씨 뿌려 김매고 추수하고, 밀을 베어 떨어 누룩을 만들어 술을 빚고 걸러 이와 같은 술을 만들어 이렇게 마실 것이네.”

경허는 잠시 말을 마치고 다시 술잔에 가득 따라 단숨에 이를 들이켜고 수염에 묻은 술을 손등으로 닦아낸 후 파전 안주를 집어먹으면서 말하였다.

“난 또 파전이 먹고 싶으면 파씨를 구해 밭을 일구어 파를 심고 거름을 주어 알뜰히 가꾸어서 이처럼 파를 밀가루와 버무려 기름에 부쳐가지고 꼭 먹어야만 하겠네.”

– 소설 길없는 길 중에서…

 


나는 빵을 좋아한다. 빵 중에서 속에 무언가 잔뜩 들어간 단 빵을 좋아한다. 이건 유전인지 우리집 남자 삼대가 다 똑같다. 특히 좋아하는 빵은 단팥빵, 크림빵, 애플파이 등을 좋아한다.

특히 애플파이는 흔치 않고 (요즘은 흔하게 먹을 수 있지만) 값도 비싸고, 사과 특유의 그 향과 달콤함에 언제라도 환영하는 빵이다.

참고로 아내와 딸아이는 취향이 정 반대여서 내 기준으로는 밋밋한 빵, 속에 아무것도 없는 빵, 맛없는 빵, 정말 아무 맛이 없는 빵을 좋아한다. 이렇게 다른 것도 신기하다.

그리고, 나는 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만들어 먹는 것을 좋아한다. 남이 만든 것 사 먹는 것보다 만드는 그 과정을 더 즐기는 것 같다.

아내는 아무래도 만들고 치우는 것에 더 관여를 많이 해서인지 남이 만들어 준 것을 먹기를 더 좋아한다. (매일 만들어 먹으니 어쩌다가 남이 만들어준 것을 먹을 기회가 생기면 불감청이나 고소원일 것이다. 이는 우리 어머니를 봐도 마찬가지다. 주부들의 큰 낙인가보다.)

얼마 전 어느 휴일에 애플파이가 먹고 싶어서 아내에게 같이 만들어 먹자고 청을 넣었다가 바로 거절 당했다. 사실 깜짝 놀랐다. 거의 왠만하면 들어주는 아내가 애플파이에 대해서는 단칼에 거부하여 어인 일인가 눈이 동그래졌다.

속으로 서운함이 커서 후에 농담식으로 ‘나중에 나 죽은 후에 그날 애플파이 안 만들어준걸 후회하며 울거야…’ 라고 메박는 소리도 했었다.

아내도 거절한 게 못내 마음에 걸리는지 그 후로 가끔 제과점에 들릴 때면 평소에 안사던 애플파이 한조각씩을 사오곤 했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애플파이는 비닐안에 들어있는 한조각 애플파이가 아니고, 차갑게 식어있는 애플파이가 아니고, 모 제과점에서 사서 먹는 이름있는 애플파이가 아니다.

내가 바라는 애플파이는 둥그런 모양을 갖고, 직접 사과를 잘라 넣고, 반죽을 만들어 냉장실에서 숙성시키고, 동그랗게 평평하게 펴서 그 위에 사과를 넣고, 오븐에서 오랜시간 익어가며, 제대로 되었을까, 맛은 있을까 우려반 기대반의 시간을 갖고 뜨끈하게 나와 가족들의 탄성과 함께 칼로 슥삭슥삭 갈라서 먹는 그런 애플파이인 것이다.

사실 아내의 거절 이후로 한번 더 요청했었는데 (아내에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하자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그런 것은 사먹는게 훨씬 맛있고 값도 싸고 좋다’는 경제성의 원리를 들며 거절했다. 🙁

그러다 오늘, 밤새 내린 눈 때문일까? 갑자기 다시 애플파이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 하얀 눈 내린 겨울에 따스한 애플파이라니 너무 잘 어울리지 않는가?

아내와 함께 만들게 아니라 내가 직접, 나홀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마음 하나 바꿔 먹었을 뿐인데 마음이 편해졌다. 아직은 이 애플파이나 저 애플파이나 같다는 지경까지는 마음이 이르지 못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시간을 내서 이렇게 이곳에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이 마음의 동함과 나의 결의를 진하게 담고자 함이며, 후에 이것도 우리의 추억으로 회상하기 위함이다.

애플파이를 만들었는지, 만들었으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어떤 모양이고 어떤 맛이었는지는 후에 별도로 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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