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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제주 렌터카 여행 (2018년 3월) – 3일차

2018년 3월 14일 수요일

아침 산책을 좋아하는 나는 여행 중에는 특히 아침 산책을 즐긴다.

북적거리는 유명 관광지일지라도 아침에 눈 떠 발길을 옮기는 아침형 사람에게만 보이는 고유한 아침 풍경과 느낌의 새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제주는 석양의 그림자뿐만 아니라 일출의 그림자도 육지보다 길게 드리워진다.

제주에서는 키다리가 된다

2015년 가족 여행 때 묵었던 산방산탄산온천 게스트하우스 신관이다. 이때 참 재미있고 좋았는데…

날짜를 보니 3월 14일이다. 아내가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요지는 (2월 14일 발렌타인 초콜렛은 엄청 받고서) 3월 14일 화이트 데이에 맞춰 여행가서 먹고 튀었다고… 하하하.

 

어제 묵은 산방산 온천 게스트 하우스 2호점은 전에 비해 바뀐 점이 두가지 있다면, 하나는 값이 약간 올랐다는 것과 두번째는 아침 식사를 준다는 것이다.

아침 식사는 1호점에서 7시 40분부터 9시까지 주고, 별도 픽업 서비스는 없어서 식사를 이용할 사람이 자차로 이동해야 한다.

아침식사는 이곳에서 이용하기로 정했는데 시간이 아직 멀었다. (역시 나는 새벽형 인간)

주변을 검색해보니 추사 김정희 유배지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차를 끌고 그리로 간다. (산방산 온천에서 약 2km 떨어져있다.)

 

추사기념관이 있어 관람을 하고 싶었으나 9시부터 개관이라 할 수 없이 발을 돌려야했고 이따 다시 오기로 했다. 유배지 주변을 둘러보다가 시간이 얼추 되어 1호점으로 아침 식사를 하러 간다.

제주에는 유채꽃이 한창 피고 있다. 가다가 유채꽃이 흐드러진 곳이 있기에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는다.

요즘 3월 중순이 제주에 유채꽃이 피는 시기인가 보다. 사실 제주 유채꽃에는 별로 안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제주 유채꽃이 아니라 제주 유채꽃으로 장사(?)를 하는 야박한 제주도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성산일출봉 근처의 광치기 해변 옆에는 유채꽃밭이 있다. 

얼마나 유명하면 지도에서도 ‘성산 유채꽃밭’이라고 표기가 되고 검색이 될까…

이곳에서 그리 유쾌하지 않은 경험을 한 분들이 꽤 있을 것이다. 입장하는데 인당 요금이 1천원인데 이는 사유지이고, 꽃을 가꾸는데 공도 들였으니 그렇다고 하겠다. 근데 지나가다가 멀리서 그곳의 사진을 찍어도 뭐라고 한다. 인심 참 야박하다고 속으로 혀를 차며 그곳을 지났던 경험이 있다. 사실 이건 수년 전 나의 개인적 경험으로써 요즘도 그곳이 그러는 지는 확신할 수는 없는데 성산 유채꽃밭이 아닌 여기 산방산 근처에서도 유채꽃이 피어있는 곳이면 거의 대부분 앞쪽에 ‘인당 1천원’이라는 팻말이 붙어있고 유료로 장사를 하고 있었다. 헐… 돈이 좋기는 한데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뭐 거의 현대판 제주도 봉이 김선달 아닌가…

위의 유채 사진을 찍은 곳은, 차를 끌고 밥을 먹으러 가다가 꽃이 소담지게 피어있어 내려서 보니 그런 팻말이 없던 곳이어서 기분좋게 사진 몇방 찍었다.

게스트하우스 1호점의 어제 밤 BBQ 파티가 벌어졌을 곳에 식사 준비가 되어있었다. 배식도 아니고 자기가 스스로 먹을 만큼 셀프로 덜어 먹으면 된다. 찬은 매우 조촐했다. 닭고기를 넣어 끓인 육개장과 김치가 찬의 전부였다. 그런데 그 맛이 장난이 아니었다. 배도 고팠지만 국물이 칼칼하며 시원하고 구수해서 세번씩이나 떠서 먹었다.

정말 맛있었던 닭고기 육개장

조촐하지만 맛깔 있었던 아침 메뉴

식사를 마치고 1호점을 나서니 산방산이 지척에 보인다. 온천 게스트 하우스에서 보는 모습과 이곳에서 보는 모습, 또 아래쪽 용머리해안에서 보는 모습이 조금씩 다르다. 전설처럼 정말 한라산 봉우리가 뚝 떨어져나와 이곳에 떨어져서 산방산이 되고, 한라산 꼭대기는 백록담이 된 것 같다.

차를 끌고 내려가니 해변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송악산이 보이고 앞쪽에 형제섬이 보인다. 근처에 용머리 해안이 있고, 산방사가 있어 그곳을 둘러보러 간다. 용머리 해안 주차장에도 충전소가 있길래 충전을 걸어두고 용머리 해안으로 가는데 (용머리 해안은 유료이다) 이른 아침 만조에 해일 위험이 있어서 입장이 안된다고 쓰여있고 문이 닫혀있다. 할 수 없이 펜스길 따라 산방연대(봉수대)까지 슬슬 걸어올라가 주변을 살펴본다.

산방연대 (봉수대)

산방연대에서 심호흡을 하며 사방을 둘러본다. 날씨가 어제처럼 화창하지는 않다. 오늘은 무엇을 할까, 오늘은 어디를 갈까 잠시 고민을 한다. 참, 고민을 사서도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멀리 송악산이 보인다. 예전에 갔을 때 그곳이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그곳을 갈까 하다가 왠지 억지로 움직이는 것 같고 마음이 내키지 않기에 생각을 접는다.

이대로 한참을 봉수대 위에 서서 주위를 살피다가 바로 옆에 있는 절로 간다. 

희안하게도 두개의 절이 나란히 붙어있다. 하나는 산방사이고, 하나는 보문사이다. (산방산을 바라봤을때 왼쪽이 산방사, 오른쪽이 보문사이다)

밖에 큰 황금 불상도 있는데 이런 겉치레에 별로 감흥이 없어 절 주변을 잠시 돌며 아까 봤던 풍경을 다시 살핀다.

절 입구에 있는 말씀은 참 좋은 말씀이다.

그대는 누구인가

성 안내는 그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

절을 천천히 둘러보곤 나와서 다시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와 짐을 싸서 차량에 넣고, 아침 온천을 즐기러 간다.

어제 하루 잘 잤던 산방산 온천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 레드향

1박에 온천 티켓 두장을 주어 한장은 당일 오후에 이용할 수 있고, 다른 한장은 다음날 오전에 이용할 수 있다. 오후에는 노천탕 이용이 가능하나 오전에는 청소를 해서 이용할 수가 없다.

어제도 탄산온천을 즐겼지만 저녁과 오전은 또 느낌이 달랐다.

어렸을 적에는 뜨거운 물에 들어가는 것도 싫어했고, 혼자서 목욕하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고, 1시간 후에 입구에서 만나자는 약속이 너무 길게 느껴졌었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취향이 바뀌었다.

다음에 할 일을 정하지 않으니 마음에 바쁨이 없고 여유작작 너무 편안했다. 기포가 몸에 달라붙는 탕안에서 심호흡하며 명상을 하기도 하고, 냉탕의 이쪽 끝에서 발로 벽을 밀어 저쪽까지 죽 미끄러가기도 하고, 온탕, 열탕, 냉탕을 번갈아가며 편안하게 목욕을 즐겼다.

1시간 30분 쯤 여유롭게 목욕을 즐기고 나오니 11시 30분 가량이 되었다. 아침을 많이 먹어 배가 출출하지는 않다. 무엇을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이번 제주에 와서 꼭 하고 싶었던 제주 도서관에 가서 책을 봐야겠다고 결정했다.

검색을 해보니 주변에 좋은 도서관이 있다. ‘안덕 산방도서관’

이번 제주 여행에 가져온 책은 ‘엄마 반성문’이라는 육아 도서이다. 아내가 제주에 이 책을 가져가라며 가방에 넣어주었다. 가져간 책을 굳이 도서관에 가서 읽을 이유는 없지만, 도서관은 책과 가까운 공간이고, 이 공간에서는 책이 훨씬 잘 읽힌다.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 입장에서 한적한 제주의 도서관에서의 고즈넉한 독서는 새롭고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독서삼매경에 빠져 책을 한참 읽다가 배가 출출해 시간을 보니 1시 30분이 넘었다. 아침에 허탕 친 추사관으로 가서 근처의 식당을 찾아본다. 마침 내가 좋아하는 국밥집이 추사관 바로 옆에 있었다.

이곳의 돼지국밥에는 봄동이라고 하나, 일찍나는 봄 배추가 들어가있어 국물이 참 시원했다. 제주흑돼지도 듬뿍 들어있어 아주 풍족하고 맛있게 먹었다. 시간도 늦어 공기밥도 하나 더 추가해서 먹었는데 후에 계산할 때 공기밥은 서비스라고 기분좋게 에누리도 해주셨다. 🙂

확실히 여행 중에 맛집이라고 유명한 집을 찾아가서 먹을 때보다, 그냥 아무 정보없이 우연히 들른 허름한 식당에서의 식사가 훨씬 만족도가 높다. 

배도 부르니 주변을 슬슬 걸으며 산책을 한다.

 

길 가다 보면 달려있는 이게 모형인 줄 알았는데 실제였다. 너무도 흔하게 달려있어 살짝 놀랐다. 과수원도 아니고 집안 마당에 이렇게 달려있다. 역시 제주…

제주 추사관 바로 건너편에 있는 기태연네 미용실

제주에 와서 머리를 깎고자 했는데 마침 미용실이 보이길래 들어갔다. 아주 정감가는 미용실이었다. 🙂 시골(?) 미용실이라 손님도 그리 없고 아무때나 깎을 수 있을거라 만만히(?)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안에는 이미 세 분의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고 1시간 30분쯤 후에나 가능하다고 하여 아쉽게 발길을 돌렸다. 추사관 관람이 끝나고 다시 들를 생각이었는데, 추사관을 나서면서는 이 생각을 까마득히 잊어버려서 다시 가지 못했다.


이제 추사관에 들어간다.

추사관은 추사의 제주 유배지였던 곳에 지어서 추사의 작품과 삶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매시 정각에 해설을 하는데 40분 정도 소요되고 전혀 지루하지 않게, 해설이 없으면 그냥 지나칠 사항들을 재미있게 챙겨 들을 수 있어 꼭 해설과 함께 관람하기를 권해본다. (해설과 함께 한번 관람하고 다시 자유롭게 관람하는게 가장 좋을 것 같다.)

여러 설명이 있었다. 추사는 추사체를 만들기도 했고, 청나라로 유학하여 금석학을 배웠고, 당시까지 무학대사비로 알고 있었던 것을 판독하여 진흥왕순수비라는 것을 밝혀냈다고도 한다. 한두개의 호가 아닌 72개의 호를 썼고, 가장 유명한 호는 ‘추사’이나 작품마다 여러 호를 썼고, 가장 즐겨 쓴 것은 ‘완당’이라고 한다. 

무량수각과 세한도에 대한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추사는 1840년 윤상도 옥사사건에 연루되어 제주 유배길에 올라 약 9년간 유배생활을 하는데 1840년(해남 대둔사)과 1846년(예산 화암사)에 무량수각 현판 글씨를 쓰게 된다. 6년간의 시간차를 보이는데 글씨에 있어 많은 변화가 보인다.

1840년 글씨는 화려하고 멋들어지고 기운이 꽉 차있다면, 1846년 글씨는 기름기가 쪽 빠진 아주 담백한,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듯한 담담함이 느껴진다.

 

1840년 해남 대둔사 무량수각 현판 (호로 ‘노완’을 썼다.)

1846년 예산 화암사 무량수각 현판 (호로 ‘추사’를 썼다.)

그리고 대둔사 무량무각 현판에는 일화가 있다. (Encyves Wiki에서 퍼옴)

대웅전 현판에 얽힌 일화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중 대흥사에 들렀다. 당시 대흥사의 주지는 차의 선인이라 불리는 초의선사(1786~1866년)였다. 대웅전에 걸린 이광사의 글씨를 본 김정희는 그 자리에서 글씨를 써주며 자신이 쓴 현판을 걸게 하였다. 그로부터 9년 뒤, 유배가 풀려 돌아가던 김정희는 다시 대흥사에 들렀다. 그는 예전의 일을 후회하며 자신의 현판을 떼어내고 이광사의 현판을 다시 걸게 했다고 한다

 

추사께서 임종하기 3일 전에 생애 마지막으로 쓴 ‘판전’. 삼성동 봉은사에 있다. (링크)

‘판전’은 삼성동 봉은사 판전의 현판이고, 우측에는 ‘칠십일과병중작’이라 씌여져있다. 선생의 연세가 71세에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과천에서 돌아가시기 3일 전에 쓰신 마지막 작품이라고 한다.

해설사분의 설명에 따르면, 선생께서 어렸을 적에 썼던 글씨와 최말년의 판전 필체가 비슷하다며 선생께서 말년에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한, 천의무봉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설명하셨는데 돌아와 검색을 해보니 비슷한 글이 있어 링크를 공유한다. (링크)

 

추사관의 백미인 세한도는 영인본으로 원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고, 펼쳐서 일반 공개를 하지 않고 둘둘 말린 상태로 보관 중이며 현재까지 박물관에서는 세번만 펼쳐졌다고 한다.

국보 180호인 세한도 (나무위키에서 퍼옴)

선생이 그린 작품은 본래 23cm*69.2cm 이나, 후에 이 작품을 보고 감탄한 청나라 문인들과 조선 문인들의 평이나 감탄을 옆에 붙여 현재는 10미터가 넘는다고 한다.


범상치 않은 추사를 본받았는지 이곳 추사관도 범상치 않다.

추사관 계단. 선생의 우여곡절이 많았던 인생을 상징하듯이 지그재그로 되어있다. 기념관은 1층이 아닌 지하로 들어가서 시작한다.

지하에는 판전이 있고, 그 위(1층)는 세한도를 묘사했다.

처음 이곳 제주 대정에 추사 기념관이 지어진다고 했을때 지역 주민들은 환호했다고 했다. 근사한 기념관이 지어지면 지역 발전에도 이바지하고, 관광객도 많이 올 것이라고… 하지만 후에 지어진 기념관은 세한도의 집처럼 소박한 모습이어서 기념관이 아닌 감자 저장소를 지은 줄 알았다고 한다.

세한도를 모티브로 만든 추사관. 소나무와 둥근 문의 집이 영락없이 세한도이다. (주 전시관은 지하에 있다.)

1층 바깥으로 나서면 실제 추사가 유배 생활을 했던 초가가 그대로 보존되어있다.

담 위를 둘러싸고 있는 가시 많은 탱자덩굴

 

기념관 바깥 1층에는 추사 선생께서 좋아하셨다는 금잔옥대(수선화)가 곱게 피어있었다. ‘금잔옥대'(금으로 된 잔에 옥으로 된 잔 받침)라니 화려함의 극치이다. 12월부터 3월까지 꽃이 피고 향이 그윽하니 꼭 맡아보라고 당부를 하셔서 허리를 숙여 향을 맡아보니, 자극적이지 않고 은은하니 너무 좋은 향이다. 수선화향 화장품이나 향수가 있다면 꼭 사고 싶다. 참고로 그리스 신화에서 자기만족으로 물에 빠져 죽은 나르키서스(Narcissus)가 죽은 자리에 핀 꽃이 수선화라고 하여 영어로 Narcissus이다.

제주에서 자생한다는 금잔옥대 수선화이다. 향이 정말 좋다.

추사관 안내가 끝나고 나 혼자 여유롭게 다시 둘러보면서 들은 말씀을 곱씹어보았다.

설명 중에 ‘세상에는 추사를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아는 사람도 없다’는 말씀이 딱 맞는 것 같다.

 

서예 체험하는 곳도 있길래 초등학교 특활시간 이후로 참으로 오랜만에 붓글씨도 써보았다.

오늘 방문할 눌치재… (후에 현판으로 쓰려나? ㅋㅋㅋ)

박물관이나 기념관을 방문해서 이토록 오랫동안, 여유롭게, 두루 둘러본 것은 처음인 것 같다. 거의 대부분 쓰윽 훑어보기만 하고 나왔었는데… 해설사 선생님의 심도있고 재미있는 해설과 함께 둘러보고 체험한 추사 기념관은 나의 이번 제주 여행 3일차의 주 기억이 되었다.

추사관을 나와서는 추사관 주차장 옆에 마침 우체국이 있길래 그곳에서 가족에게 쓸 엽서를 구입했다.

(엽서는 내일 제주를 출발하기 전에 눌치재에서 가족들에게 써서, 근처 우체국에서 부쳤다.)

추사관을 나온게 약 4시 30분으로 아직 시간 여유가 있다.

어디에 가서 이 여행의 여운을 만끽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동안 숱하게 제주에 왔어도 주상절리를 한번도 본적이 없다는 생각에 그곳에 가기로 했다.

이곳은 그동안 보러다닌 곳과 달리 유료 입장에 유료 주차장을 이용해야 했는데, 사실 별 감흥은 없었다.

가우디는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자연의 선’이라고 했다고 한다. 자연적 발생으로 육각기둥이 생긴다니 그것 참 묘하다고 생각하다가 벌집도 육각이라는 생각이 들며 그냥 웃음이 나왔다. 자연의 섭리는 묘하다 묘해.

여유롭게 노을이 질때까지 천천히 산책을 하다가 어둑해질때 나와서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눌치재로 향한다.

대학 후배 커플의 별장(?)인 눌치재. (나흘째날 사진이다.)

눌치재 마당에 있는 철봉. 철봉 이름을 천의무’봉’으로 지었다고 한다. 센스장이들… (나흘째날 사진이다.)

주변에 몇몇 식당이 있는데 두곳은 마침 수요일이 휴무이고, 다른 한 곳은 이미 영업을 종료했다.

오다가 보였던 식당에서 식사를 할 걸이라는 후회가 잠깐 되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다행히 눌치재 바로 앞에 편의점이 있다.

김포공항에서 사 먹었던 삼각김밥과 요거트 조합이 꽤 맛있었던 게 생각나서 이를 구입해서 눌치재로 들어간다.

작년 7월 나홀로 배낭여행 이후 다시 방문하니 8개월 만에 다시 온 눌치재 참 반가웠다. (새집 냄새조차도 좋았다. 하하.)

삼각김밥과 요거트, 그리고 맥주로 조촐히 저녁을 먹으며 하루를 돌아본다.

많은 것을 하지 않고, 보지 않고, 돌아다니지 않으려 했지만 참 많은 일을 한 것 같은 긴 하루였다.

여행을 하면 하루하루 참 의미있고 알차게 보내는 것 같아 뿌듯함이 든다. 일상도 여행처럼 지낼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눌치재 책장에는 작년에 다 못본 ‘신의 물방울’ 만화책이 보충되어있었다.

만화책을 보다가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제주에서의 세번째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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