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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설악산 오색코스

회사에서 간, 내 생애 최초의 야간산행. (9월 2일 22:00 분당에서 속초로 출발)

새벽 3시부터 15시까지 12시간 산행.

오색분소 (들머리) -> 대청봉 -> 중청대피소 -> 희운각대피소 -> 양폭대피소 -> 무너미고개 -> 귀면암 -> 비선대 -> 신흥사 -> 설악동탐방지원센터 (날머리) -> 척산온천 -> 장사항 일월회집

이렇게 힘든 등산은 처음이었다.

가기 전에는 의기양양했다. 사실 등산을 좋아하고, 즐겨하고, 올해에도 북한산, 한라산도 가고, 유럽에 갔을때 등산은 안했지만 무거운 배낭 메고 하루에 20km 이상 씩 걷기도 많이해서 별 상관 없을 줄 알았다. (그때가 4월이니 벌써 5개월 전이다… 쩝)

회사에서 나보다 나이많은 분들도 많이 있기에 아무 무리가 없을 줄 알았다.

사실 그동안 내 체중이 많이 불어난 것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게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칠 줄은 몰랐다.

마음은 예전 몸무게로 인지하고 있는데, 몸은 처음 접하는 몸무게이다. 예전보다 무거운 아령 2개를 품에 안고 걷는 것이니 절로 헉 소리가 났다.

전 같으면 가다가 잠시 쉬면서 물 한모금, 오이 한 조각, 초콜렛 한 조각을 먹으면 바로 기력이 쨍하고 솟아서 또 어느정도는 생기발랄하게 다녔는데 이번에는 열걸음을 더 못 걷겠더라.

결국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쳤다. 나로 인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최후발대… 🙁

동료애를 새삼 느꼈다. 늦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버리고 가는게 아니라 부축하고, 끌어주고, 밀어주고, 독려하여 함께 끝까지 가는게 동료라고 새삼 느꼈다.

그동안 나는 옆에서 밀고, 끌고, 독려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내가 밀리고, 끌리고, 독려를 당하니 다시 새삼 느끼겠더라…

진정한 의사가 되는 방법은 본인이 직접 환자가 되는 것이 확실한 방법인 것처럼 이번에 제대로 뒤처짐을 당하니 이제 조금 알겠다. 이래서 회사에서 단체 산행을 하려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힘들어서 풍경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고, 사진도 찍지 않았다. 사진 찍을 정신이 있으면 그냥 넋을 놓고 쉬었다.

왜이리 체중이 불었을까… 왜 이리 살이 쪘을까…

핑계이긴 하지만 원인을 분석해보자.

1) 일단 지난 여름에 더위를 핑계로 움직이지 않았다.

2) (스트레스성 원형)탈모를 핑계로 헬스장도 다니지 않았다.

3) 탈모약과 두드러기 약 때문인지 (스테로이드) 밥맛이 엄청 좋다.

4) 입시생 (중3) 인 아들을 핑계로 주말에도 꼼짝하지 않았다.

등반 당일 살짝 걱정이 되어서 체중계에 올라갔다가 깜짝 놀랐다. 생애 최초로 목도한 상상할 수 없었던 몸무게… 체급이 달라져있었다. 휴…

새벽 3시에 시작된 오색에서의 야간산행은 주변 풍경도 전혀 인지할 수 없고, 머리에 쓴 헤드랜턴의 불빛에만 의지해 앞만 보고, 아니 위만 보고 계속 걸었다. 계속해서 나오는 계단계단계단… 돌계단, 나무계단, 철계단…

오색에서 대청봉까지는 5km. 예상 소요시간은 4시간. 보통 내가 등산다닐 때 이런 예상 소요시간 보다는 훨씬 빠르게 도착하곤 해서 늦어도 3시간이면 넉넉하리라 생각했는데, 정확하게 4시간을 꽉 채워 올라갔다. 다른 선발대는 2시간 30분만에 도착했다고 한다. 🙁

다들 ‘정재성씨, 스웨덴 쿵스레덴도 다니고, 제주도 올레길도 많이 걸은 트레커 아니었어? 오늘 왜 이래?’ 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죄송합니다… 살이 많이 쪄서 그렇습니다… 휴…

후발대는 ‘늦었다’는 심적 부담이 크더라. 그리고 선발대는 충분한 휴식시간을 가질 수 있지만 후발대는 그럴 수가 없다. 미리 와서 쉬고 있는 선발대를 만나서 같이 쉬어도 조만간 선발대는 일어나고 일정을 맞춰보자는 생각에 함께 일어나게 되기 때문에 충분히 쉴 수가 없다. 그래서 악순환이 계속된다. 정말 생애 최초로 등산 중에 컴백을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다. 생애 최초로 등산 중에 헬기 부르는 것을 진중하게 생각해보았다.

등산에 있어 다른 코스도 마찬가지겠지만, 오색코스는 더더욱 돌아갈 수가 없다. 그 가파른 계단을, 깜깜한 새벽에 나 혼자 뒤돌아 내려간다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고, 너무 가팔라서 체력적으로도 부담이고, 그 새벽에 내려가도 버스도 이미 가고 없고, 아무것도, 아무도 없기에 정말 울며 겨자먹기로 끝까지 앞으로 가야했다.

건강에 있어 만악의 근원이 체중, 뱃살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걸 너무 만만히 보았다.

등산에 대한 소감을 말하자면…

앞서 말한 것처럼 오색에서 대청봉까지는 어두운 새벽이라 주변 풍경을 전혀 볼 수도 없고, 숲속에서 걷는 것이라 조망이라는게 없다. 그냥 앞사람 엉덩이만 보고 걷게 된다.

대청봉에서의 풍경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암괴석과 운해의 장관이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9월 초이지만 대청봉 아침의 칼바람은 정상에서의 오랜 머무름을 허용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등산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간은 힘들게 봉우리에 오른 후에 능선을 따라 유유자적 소요하는 구간인데, 설악산의 이 코스는 그런 유유자적 능선이 없다. 없어도 전혀 없다. 흙길도 없다. 모두가 다 바위, 돌 길이다. 계단도 모두 돌계단 혹은 철계단이다. 12시간동안 등산을 하면서 흙을 밟아본 기억이 없다. 정말 흙이 없어도 너무 없다. 그래서 발바닥과 무릎(소위 도가니)이 너무 아프다. 설악산은 결코 만만한 산이 아님을 이제야 알았다.

대청봉은 처음이지만, 설악산에는 여러번 왔었다. 비선대, 금강굴, 흔들바위, 울산바위, 비룡폭포, 권금성 등에도 올랐었다.  생각해보니 모든 코스에 흙은 없었던 것 같다. 내 뇌리에 설악산은 정말 ‘악’산으로 콕 박혀서 결코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새벽 3시에 출발하여 (3시에 출입문이 열린다.) 7시에 대청봉에 도착했고, 후발대끼리 기념촬영을 한 후에 바로 옆에 있는 중청대피소에서 라면으로 아침을 먹고, 바로 또 산행을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하행길인데 정말 가도가도 끝없는 돌바닥길이었다. 설악의 기암괴석은 정말 신의 솜씨라 칭할 만 했다. 단순히 바위만 있는 것은 아니라 구름과 나무와 운치가 어우러져 신선의 산이라 할만 했다. 그런데 너무 힘이 들었다. 오색으로 오를 때만큼은 아니지만 바닥이 돌이라 무릎에 부담이 왔다. 아침먹고 8시 경에 중청대피소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는데 3시 넘어서 도착을 했다. 비선대를 지나자 길이 제대로 평평해졌는데 역시 마지막까지 시멘트길로 딱딱했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한명도 포기나 낙오자 없이, 이탈자 없이, 부상자 없이 모두가 목적한 코스를 완주했다. 다리는 절고,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있고, 얼굴에 피곤이 절로 묻어나지만 가슴엔 뭔가 벅참이 있었다. 설악산이 이런 산이었구나…

어제 밤에 타고 온 버스가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어 그걸 타고 척산온천으로 가서 가볍게 온천욕을 즐겼다. 12시간 등산을 하고 나서 온천욕이라니… 등산하면서 계속 상상한 것은 미지근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는 것과 시원한 맥주나 사이다를 원샷하는 것이었다. 몸이 너무 피곤하여 오래 물에 담그면 푹 퍼질 것 같아 가볍게만 온천욕을 즐기고 나와서 장사항 옆에 있는 일월회집으로 가서 자연산 회를 원없이 먹었다. 회사 동료분의 친척이 하는 곳이어서 그런지 음식이 더 잘나온 것 같다. 이렇게 맛있는 회라니…

식사 후에 모두가 앞의 해변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버스에 올라 아무 말도 없이 다들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눈을 뜨니 대략 3시간이 지났고, 버스는 회사 앞에 도착해 우리가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에서 멈춰있던 몸이 다시 움직이려니 뻣뻣하게 굳어 움직여지지 않는다. 그렇게 토요일 밤이 마무리 되었고, 일요일에는 침대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아니 꼼짝하지 못했다.

몸과 마음이 나태했음을 반성하고 이번 산행을 계기로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생활로 돌아가기로 했다.

너무 많은 욕심내지 말고, 조금씩, 천천히, 꾸준히…

등산하면서는 다시는 설악산을 오지 않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했는데, 희한하게도 다시 설악산을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

기다려라… 설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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