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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프라이어로 군밤 만들기 (절반의 성공)

지난 추석 때 본가의 부모님께서 직접 따신 올해의 산밤을 주셨다.

이런 밤은 바로 먹는 것보다는 며칠 냉장고에서 숙성(?)이 되면 당도가 확 올라간다. 숙성 후에는 생밤을 까서 날로 먹어도 아주 달고 맛있지만 밤은 뭐니뭐니해서 구워먹는게 최고다.

검색을 해보니 만능인 에어프라이어로 밤도 구울 수 있다고 하여 시도해본다.

방법은 아래와 같다.

  1. 생밤을 10분 정도 찬물에 불린다
  2. 밤을 구우면 내부의 압력 팽창으로 터지기 때문에 칼로 껍질의 일부를 갈라놓는다.
  3. 에어프라이기에 넣고 적당한 온도, 시간으로 굽는다.
  4. 맛있게 먹는다.

내가 실수한 부분은 2번, 껍질의 일부를 갈라놓는 부분이었다.

밤의 머리 부분을 좀 넉넉히 갈라놓아야하는데 (음… 쓰고보니 뭔가 잔인한 표현이다…) 귀찮아서 대충 꼬리 부분을 살짝살짝 갈라놓기만 한 것이다. (일일이 하려니 밤이 너무 많아서 귀찮아졌어…)

흠집 낸 밤을 신나는 마음으로 에어프라이어에 넣고 사진을 찍고 맛있는 군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깨끗이 씻어 찬물에 10분 정도 불린 밤. 머리쪽에 넉넉히 흠집을 내야하는데 꼬리 부분에 조금만 흠집을 냈다.
에어프라이어에 장착!
185도씨 30분으로 설정! (시간은 봐서 적정한 시간에 끄기로 함)

한 30분 지나면 맛있게 먹겠구나 하고 들떠있는데 10분 만에 펑펑하고 터지는 소리의 향연이 펼쳐진다. 아내가 화들짝 놀라 중단시키고 에어프라이어 문을 열어보니 대참사가 벌어졌다. 그게 아래 모습이다.

에어프라이어 군밤 대참사

굽기 시작한 지 10분도 채 안되어 난리가 났다. 압력이 자연스럽게 흩어질 정도로 껍질이 갈라져있어야하는데 그렇지 않아서 밤이 펑펑 터지며 안의 살이 터져나온 것이다. 에어프라이어 위쪽에도 밤의 살들이 도배가 되어있다. 아내는 이 상태로는 에어프라이어를 지원해줄 수 없다며 다른 방법을 강구해보라고 한다.

할 수 없지. 선발이 무너지면 구원투수가 마무리해야지. 나에게는 만능 절대쿠커인 더치오븐이 있다.

더치오븐에 이 밤들을 옮겨담고 약한 불로 살살 익힌다. 아무리 약한 불로 해도, 밤은 더치오븐 안에서 계속 터지고 생난리가 났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지금 쓰면서 생각해보니 더치오븐에 옮기기 전에 밤의 껍질에 추가로 생채기를 냈으면 더치오븐에서 터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도 않았고, 생각을 했더라도 다시 일일이 생채기를 내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귀차니즘)

밤이 터지는 압력은 무시무시하다. 밤이 터질때마다 그 무거운 더치오븐 뚜껑이 살짝 들썩이고 내용물이 밖으로 뿜어져나오기도 한다.

20분 후에 뚜껑을 열어보니 더치오븐 속은 난리가 났지만 그런데로 잘 구워졌다. 

아내 말에 의하면 껍질에 생채기를 충분히 잘 냈으면 판매하는 군밤처럼 껍질을 홀라당 손으로 쉽게 벗겨먹을 수도 있을텐데 그렇지 않아서 숟가락으로 파 먹는게 좋겠다고 한다.

더치오븐에서 마무리 된 구운 밤과 힘들게 파서 모아놓은 밤살

세상에서 가장 귀찮은 것 중의 하나가 구운 밤을 쪼개서 숟가락으로 파먹는 것이고,

세상에서 가장 설레는 순간 중의 하나가 구운 밤을 쪼개서 숟가락으로 파서 모아놓은 것을 꿀을 섞어 비벼서 숟가락으로 크게 퍼먹거나 손으로 동그랗게 경단식으로 만들어 입안에 쏙 넣어 먹는 순간이고,

세상에서 가장 나쁜 짓 중의 하나가 남이 그렇게 모아서 만들어놓은 밤 속살의 경단 결정체를 낼름 뺏어먹는 것이다.

내가 1, 2번을 했고, 아내가 3번은 했다. 🙂

부모님의 주신 밤의 1/5를 이렇게 했으니 앞으로 4번 더 밤을 구워먹어야겠다.

다음에는 제대로 성공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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