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걷기여행 2017] 2일차 (도두봉 전 -> 곽지과물해변) (2/2)
날짜: 2017년 7월 11일 (화요일)
제주 올레길에는 편의점이 참 많았다. 관광지가 형성된 곳에는 거짓말 약간 보태면 100미터마다 하나씩 있다고 할 정도였다. (관광지가 그리 넓지 않아서 400미터 지나면 끝이기도 하지만… 🙂 )
편의점은 무거운 배낭족인 나에게 휴식과 충전의 공간이 되었다.
편의점마다 바깥에 테이블이 있고, 파라솔이 있어 그 아래에서 여유롭고 편안하게 쉴 수 있었다.
발바닥이 점점 아파온다. 양말을 벗고 살펴보니 물집의 면적이 점점 커지고 있다. 길이 계속 아스팔트여서 기온도 덥고 걷는 발이 영 편하지가 않다. 올레길 대부분이 이렇게 아스팔트인지, 내가 걷는 이 코스가 유독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다. 제주 올레길은 등산화가 아닌 워킹화라고 머리에 각인시켰다. 나중에 정보를 찾아보면 생각이 또 바뀔려나?
오전에 세차게 내렸던 비구름은 물러가고 가끔 파란하늘도 보이고 무더위가 찾아왔다. 발이 아파 한걸음 한걸음 터벅터벅 천천히 걷는데 길 건너에 상큼해보이는 매장이 보였다. 길을 건너야해서 그것도 귀찮아 그냥 지나갈까 하다가 지금 아니면 여기를 언제 들르겠나 싶어서 큰길을 건너 매장에 들어갔다. 매장은 망고 전문점 ‘망고 홀릭‘이었다.
망고를 필리핀에서 수입한다고 하고, 내부 인테리어도 필리핀 열대풍으로 되어있었으나 내부는 에어콘 바람으로 너무 시원했다.
값은 결코 싸다고 할 수 없지만, 질이 아주 뛰어났다. 혼자가 아닌 둘 이상이면 생망고 신선로를 먹었을텐데 혼자라서 생망고 디저트를 선택했다. (탁월한 선택)
과일을 좋아하는 내게 이곳은 아주 딱이었다. 농익은 망고의 맛이라니…
망고홀릭에서 아주 맛있게 망고 디저트를 먹고, 충분히 휴식도 취하고, 스마트폰 충전도 빠방하게 하고선 다시 배낭을 메고 나왔다.
이름도 예쁜 애월 해안로를 터벅터벅 걷는데 오랜만에 학교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결혼해요~’. ㅋㅋㅋ
제주도 애월을 배낭메고 걷고 있다고하니 효리네 민박에 가는 것은 어떠냐고 한다. 하하하. 그때까지 효리네 민박이라는 프로그램을 잘 몰랐는데 여행 후에 돌아와서 찾아보니 요즘 이슈가 되고 있더군.
애월을 지나 한담이 가까워지니 북쪽이 아닌 서쪽 바다가 지척에 보이고 해가 지려면 멀었지만 서쪽 바다의 고즈넉함과 편안함이 느껴졌다. 그동안 걸으며 사람들을 많이 보지 못했는데 한담을 지나면서는 풍경을 즐기며 사진을 찍는 여러 관광객들을 보았다.
가다가보니 한담에서 곽지로 이어지는 곳에 정돈된 해변길이 나왔다. 해변길 이름이 장한철 산책로라고 되어있었다. (다른 이름으로는 한담해변산책로)
제주환경일보 기사에 의하면
장한철은 누구인가.
장한철은 1770년제주에서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올라가던 중에 풍랑을 만나 바다에서 5개월을 표류한 끝에 돌아와 1년후인 1771년에 쓴 세계해양문학의 4대 백미로 불리우는 ‘표해록’의 저자라는 것이 애월문학회의 평가다.
따라서 애월리와 애월문학회를 중심으로 그동안 장한철을 새롭게 조명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1700년대에 한담마을에서 태어난 장한철은 생가도 지금 남아 있어 이를 복원하는 작업도 구상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드디어 곽지과물에 도착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길을 걸으며 어제처럼 운좋게 찜질방이나 목욕탕 간판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까 싶어 건물 간판을 살펴본다. 눈에 띄지 않는다. 해변에 있는 편의점에서 물과 맥주 등을 사며 가까운 곳에 찜질방이나 목욕탕이 있냐고 물어보니 이 근처에는 없단다. 근처에 게스트하우스가 있기는 한데 그것도 귀찮다. 오늘은 이곳의 명물인 노천탕에서 씻고 해변에 어설프게나마 텐트를 치고 자야겠다.
예전에 가족 캠핑 왔을때 쳤던 곳에 텐트를 쳤다. 궁하면 통한다고 갖고 있던 등산스틱과 타프 끈을 이용해 텐트 중앙 부분을 엮어서 지지할 수 있었다. 내 몸 하나 들어가 숨쉬고 발 뻗어 누울 공간 하나가 간신히 생긴 것이다.
어떤 아이가 이 앞을 지나가면서 아이의 아빠에게 ‘아빠~ 이 텐트는 조금 이상해~~’ 라고 얘기하는게 들렸다. ㅋㅋㅋ
아이 아버지 왈. ‘이상한게 아니라 혼자 여행오셨나봐. 아주 작게 치는 소형 텐트야~’ 라고 대답해주셨다. (감사합니다.)
텐트를 치고 짐을 정리하고 일단 노천탕으로 씻으러 간다.
목욕을 노천, 영어로 말하면 open air에서 해본 경험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이 항상 건물 안에서, 밀폐된 공간 안에서 했을 것이다. 고개를 들면 하늘이 보이는 뻥 뚫린 곳에서 하는 목욕은 색다르게 상쾌한 느낌을 주고, 이곳의 용천수는 그 느낌을 배가시키도록 짜릿하게 시원하다.
참고로 이곳의 물은 바다로 그대로 흘러가므로 이곳에서는 비누나 샴푸 등을 쓰면 안되고 그냥 물로만 몸을 닦는 것에 그쳐야한다.
저 바위와 바닥에 갯강구가 많은데 사람이 지나가면 후다닥 어디론가 사라지고,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니 겁먹지 말고 그냥 당당히(?) 샤워를 만끽하면 된다.
누군가 말에 의하면 간혹 이 가운데를 목욕탕으로 생각해서 이 물속에 들어가서 저 바다로 스스로 헤엄쳐나가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나가면 그냥 다 보여주는 것이다. 🙂
깨끗하게 씻고 텐트로 들어가니 만사가 다 귀찮다. 망고를 맛있게 먹어서 그런지 배도 고프지 않다. 집에서 가져온 주전부리를 안주거리로 해서 맥주를 한잔하고 자리에 누웠다. 날이 더워 침낭도 꺼내지 않고 그냥 자리에 누웠다.
내 한몸 간신히 눕힐 정도의 비좁은 공간이지만 그런데로 아늑하니 안정적이다.
돌이켜보니 긴 하루였다. 찜질방에서 일어나 샤워하고 아침 일찍부터 걸어서 이곳까지 왔다. 날씨도 아침에는 비가 내렸는데 지금은 화창하고…
곽지에 도착해서는 거의 걸을 수가 없었는데 발바닥 상태를 확인한다.
발바닥 가운데쪽은 물집이 아니라 그냥 허물자체가 밀려서 올라오고 있다. 갖고 있는 핀과 휴지를 써서 물집을 터뜨리고 닦아낸다. 쿵스레덴에서도 하루를 마감할때에는 이렇게 힘이 들고 피곤한데 내일 또 걸을 수 있을까 자신할 수 없었지만 하루 잘 자고 나면 또 잘 걸었었는데 내일도 잘 걸을 수 있을지는 자신할 수가 없다. 그때는 몸이 피곤했던 것이고 지금은 발이 고장난 것이기 때문에 상황이 서로 다르다.
어쨌든 오늘도 수고했고, 원했던 걷기를 원없이 하고 있으니 전혀 불만이 없다.
누군가 해변에서 터뜨리는 폭죽소리를 자장가 삼아 깊이 잠이 들었다.
길고, 힘들고, 색다른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