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반게리온 Q 14년의 공백을 채우는 관전 포인트 5가지

개봉 당시 극장에서 느꼈던 그 당혹스러움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하더군요.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Q는 친절함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불친절한 작품이지만 그 속에 숨겨진 날 선 의도들을 읽어내면 비로소 안노의 지독한 세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A cinematic shot of a lone teenage boy standing on a ruined concrete rooftop, looking up at a massive, ominous red moon in a dark, starry sky. The atmosphere is melancholic and post-apocalyptic. Cinematic lighting, deep shadows, 4:3

에반게리온 Q에서 아스카의 성격이 소류처럼 변한 이유

파에서의 아스카가 나름대로 타인과 소통하려고 애썼던 소녀였다면 Q에서의 아스카는 다시 예전 구판의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가 떠오를 정도로 날이 서 있었습니다. 14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녀가 겪었을 고립감과 배신감이 그대로 투영된 결과라고 보였어요.

신지를 향해 유리창을 깨부술 듯 주먹을 휘두르는 장면은 단순히 화가 난 것을 넘어선 깊은 원망의 표현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카지와의 애정 전선이 서사의 중심에 있었다면 이번에는 오로지 신지라는 존재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만 남은 느낌이었죠.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과거의 날카로운 아스카를 소환하며 신지가 마주한 현실이 얼마나 가혹한지를 강조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분더의 복잡한 디자인이 주는 시각적 압도감과 아쉬움

분더라는 거대 전함의 등장은 이 작품의 장르를 순식간에 SF 함대전으로 바꿔놓았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날개 달린 고래 같기도 하고 뼈대만 남은 기괴한 생명체 같기도 해서 참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나네요. 안노 히데아키 감독의 3D 성애자 기질이 유감없이 발휘된 디자인이었습니다.

  • 세밀하다 못해 복잡해서 시선이 분산되는 메카닉 구조
  • 전작들에 비해 다소 이질감이 느껴지는 렌더링 방식
  • 후방에만 머물던 인물들이 전면으로 나선 전투 배치

당시 오프닝으로 선행 공개되었던 분더의 전투씬은 기술적으로는 훌륭했지만 에바 특유의 미학적 감성은 조금 덜어낸 느낌이었습니다. 지나치게 디테일한 설정이 오히려 작품의 몰입을 방해한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멸망해가는 세계관을 표현하기에는 그 기괴함이 적절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A massive, complex biological battleship with skeletal wings flying through a dark, turbulent sky filled with thick clouds. The ship has a unique organic and mechanical hybrid design. Dramatic scale, high contrast, 4:3

신지를 위한 96분의 가혹한 억까를 견디는 방법

영화를 보는 내내 신지가 불쌍해서 견디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14년 만에 깨어난 소년에게 아무도 상황을 설명해주지 않고 그저 타지 말라는 명령만 반복하는 모습은 관객 입장에서도 고문이나 다름없었죠. 하지만 이 불친절함이야말로 감독이 설계한 의도적인 장치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관객이 신지와 동일한 수준의 정보만 갖게 함으로써 그가 느끼는 소외감과 공포를 공유하게 만드는 방식이었거든요. 주변 인물들이 보여주는 차가운 태도는 신지가 저지른 니어 서드 임팩트의 무게를 실감하게 합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세상의 적이 되어버린 소년의 멘탈이 부서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적인 감상 포인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카오루와 신지의 관계가 BL처럼 느껴지는 3가지 근거

작품 중반부부터는 거의 신지와 카오루의 동인지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연출이 쏟아집니다. 세상 모두가 신지를 부정할 때 유일하게 긍정해주는 존재가 카오루뿐이니 신지가 그에게 의지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겠죠.

  • 피아노 연주를 통한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교감의 강조
  • 신지의 목에 채워진 폭탄 목걸이를 대신 가져가는 희생
  • 오로지 신지의 행복만을 위해 세상을 다시 만들겠다는 맹목성

이들의 관계는 우정을 넘어선 무언가로 묘사됩니다. 카오루가 신지를 꼬시는 과정이 거의 리디북스 광공 수준으로 집요하게 그려지는데 이는 신지에게 유일한 안식처를 제공한 뒤 그것을 다시 뺏으려는 극적인 장치로 작동합니다. 카오루의 죽음이 신지에게 영원한 트라우마로 남게 되는 과정은 이 작품에서 가장 잔인하고도 아름다운 장면이었습니다.

폐허 속에서 피아노를 치는 두 소년

사운드 속에 숨겨진 엔드 오브 에바의 기괴한 흔적

다시 보기를 반복하다 보면 배경음 속에 섞인 중첩된 목소리들에 소름이 돋을 때가 있습니다. 특히 분더 내부나 임팩트가 발생하는 순간의 음향을 자세히 들어보면 구판 엔드 오브 에바의 보완 장면에서 쓰였던 다중 음성들이 교묘하게 섞여 있더라고요.

이런 청각적인 장치들은 신극장판이 구판과 완전히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님을 암시하는 복선처럼 느껴집니다. 대사들 대부분이 부정과 거부의 말들로 가득 차 있는데 이는 보완을 거부했던 과거의 의지들이 현재의 세계선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죠. 단순한 팬 서비스를 넘어선 안노 특유의 집요한 사운드 설계가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불친절한 전개 속에서 시리즈를 이해하며 감상하는 법

에반게리온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분들이 Q를 보면 도대체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는 게 정상입니다. 사실 시리즈 전체를 다 본 사람들도 14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니까요. 이 불통의 미학을 즐기는 것이 에바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입니다.

  • 모든 설정을 이해하려 들지 말고 신지의 감정선에 집중하기
  • 배경에 깔린 폐허의 이미지와 멸망한 세계의 미학 감상하기
  • 대화보다는 인물들의 눈빛과 미세한 행동의 변화 관찰하기

안노 히데아키는 친절한 가이드북을 제공하는 대신 관객이 직접 이 파편화된 세계를 조립하게 만듭니다. 굳이 모든 복선을 회수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갖는 불친절함이 바로 에반게리온만이 가질 수 있는 독보적인 개성이라고 생각합니다.

A teenage girl with an eye patch and a red pilot suit standing at the edge of a cliff, looking out over a vast, desolate red landscape. The ground is cracked and barren. Dramatic sunset, wide perspective, 4:3

에반게리온 여운을 정리하며 다시 꺼내 본 소감

시간이 흘러 다시 마주한 에반게리온은 여전히 날카롭고 매혹적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작은 디테일들이 보이고 인물들의 절망이 더 깊게 다가오는 걸 보니 저도 그만큼 나이를 먹었나 봅니다. 불친절하고 괴롭지만 자꾸만 다시 보게 만드는 힘은 결국 이 작품이 가진 본질적인 생명력에서 나오는 것이겠죠. 여러분도 오랜만에 에바의 세계에 빠져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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