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쿵스레덴 (KUNGSLEDEN) – 8일차 (2/2)
2016년 6월 22일 (수요일)
- 경로: Teusajaure에서 Vakkotavare까지
- 걸은 거리: 17.8km (iPhone 건강 App)
- 걸은 시간: 07:30 ~ 15:30
- 난이도: 상
- 강평: 강을 보트로 건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쿵스레덴의 길은 매우 미끄럽기도 하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비상연락처는 알고 있어야한다. 비수기에는 버스, 배 등의 운행시간을 미리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한다.
이 지도를 보면 똑바로 가지 않고 옆으로 돌아가는 뜬금없는 우회로가 이상하게 느껴질 것이다.
냇물을 건너야하는데 그 다리까지 가는 길이 한참을 돌아가야한다.
우회로 시작 부분에 아래처럼 이쪽이 다리 (Bro) 라고 표시가 되어있다.
배꼽시계는 정확하다.
그리고 20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강도 건너고 언덕도 오르고 이렇게 길을 계속 걷는 것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에너지를 필요로한다.
지금까지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느긋하게 천천히 걷다가 지치고 때되고 적당한 곳이 보이면 대충 그곳에 텐트치고 자고 했는데 오늘은 왠지 조급함이 있다.
그 이유는 Vakkotavare에서 그 다음 목적지인 Saltoluokta까지는 포장된 길을 따라 버스를 타고 가야하고, 그 버스는 하루에 한번, 오후 2시 40분에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 버스 때문에 아침에도 일찍 강을 건너기 위해 서두른 것인데 바람으로 인해 시간을 많이 써서 좀 늦은 감이 있다.
어차피 늦었다면 천천히 가도 될텐데 아직은 완전히 늦은 것도 아니어서 미련이 좀 남아있었고, 그 버스를 못타면 꼬박 24시간을 기다려야한다.
아직 성수기가 아니라 하루에 딱 한번 버스가 다닌다.
그래서 왠만하면 과자, 치즈 등 간식으로만 에너지를 보충하고 서둘러 길을 걸었다.
그러다가… 그러다가… 그러다가…
미련을 내려놓았다.
뭘 여기까지 와서, 이런 좋은 길을 걸으면서도 서두르고 재촉하고 조바심 내냐…
여기 경치 좋고, 공기 좋고, 날씨 좋은 이곳에서 짐 내려놓고, 다리 펴고 앉아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경치 구경도 하고 쉬면서 가자.
지금이, 여기가 최고다.
미련을 내려놓고, 배낭도 내려놓았다. 🙂
점심으로 먹은 것은 이것인데 안먹어본 것이라 뭔지도 모르고 샀다.
크기는 손가락 한마디 정도로 아주 작고, 겉은 밀가루 같고 속은 잘게 간 고기가 들어있다. 어찌보면 만두와 비슷한 셈이다. 크기가 1/20 정도로 작을 뿐…
물을 넣고 끓이면 금방 익는다.
배부르게 먹고, 남은 것은 비닐에 넣어 주머니에 넣어서 걷다가 힘이 들면 꺼내 먹었다.
고기가 들어있어서인지 맛도 좋고 먹으면 기운이 금방 생긴다.
지금도 이 메뉴를 생각하면 왠지 고맙고(?) 든든한 마음이 든다.
넘어진 김에 쉬었다 간다고 점심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풍경도 구경하다가 천천히 걸어갔다.
전에도 말했지만 포기할 것은 포기하면 마음이 편하다. 🙂
오전에 Teusajaure를 배로 건너려고 노력하다가 신발에 물이 들어갔고 그 젖은 발, 신발로 이런 돌길을 포함하여 하루 종일 걸었더니 발에 무리가 되었다.
그 결과가 어땠는지는 나중에 사진으로 공개하겠다. (극혐주의)
걸으면서 또 가족들, 친구들, 동료들에게 영상편지도 쓰고, 휴대폰에 들어있는 노래나 음악도 듣고, 따라 부르기도 하고, 모르는 사람이 옆에서 보면 실성한 사람처럼 중얼거리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여유작작, 유유자적 걸었다.
(이 영상편지로 인해 후에 동료들 사이에선 누군가 어딘가로 놀러가면 ‘영상편지 꼭 보내고~~’ 라는 부탁 아닌 부탁이 유행이 되었다. 🙁 )
아침에 같이 보트를 타고 강을 건넜던 두 여행객은 지금쯤이면 Vakkotavare에 도착했을려나, 나는 오늘 버스를 타지 못할테니 그들을 다시 볼일은 없겠구나~~ 라고 생각이 들었다.
길었던 평지가 끝났는지 길이 살짝 내리막으로 변함이 느껴져 더욱 룰루랄라 신나게 걸었다. 아침에 그 스웨덴 남녀 여행객을 제외하고는 길에서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근데 저 앞쪽에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반갑다.
점점 더 가까이 갈 수록 모습이 뚜렷이 보인다.
바위 위에 앉아 반쯤 누워 침낭을 덮고 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까이 가니 다름아닌 아침에 만났던 그 스웨덴 여성이다.
다시 볼 줄 몰랐는데 이렇게 예상치 못하게 만나니 더 반갑다.
길은 내리막이었다.
Hi~ 라고 인사하려다가 발이 앞으로 쭉 미끄러지며 꽈당하고 심하게 넘어지고 말았다.
나의 목소리와 넘어지는 소리에 그 여성도 놀라 나를 쳐다보았다.
여기에서 미끄러져 넘어졌다.
위쪽은 돌멩이로 되어있고 갑자기 나무 판자길로 바뀌었다.
은근한 내리막 길이고 물이 이 나무 판자길을 따라 흘러 내리고 있다.
나무에 이끼가 끼어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물과 어울려 아주 맨질맨질하다.
넘어지기에 딱 좋은 조건을 모두 갖추었다.
넘어진 나는 깜짝 놀랐으나 이번에도 운 좋게 별 다친 곳 없이 옷을 툭툭 털며 일어났다.
사실 미끄러져서 넘어지기 직전에 손에 들고 있던 등산 스틱으로 한번 중심을 잡았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일어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난 그녀에게 물었다.
”여기서 자고 있었어요? 피곤해서 쉬고 있었어요?”
….
….
….
”당신이 넘어진 바로 여기서 넘어져서 정강이 뼈가 부러졌어요. 흐흐흑…. ”
….
….
오 마이 갓!!!
저쪽을 보니 같이 걸어갔던 스웨덴 남자가 서 있다.
그에게 물어보니 그 여인이 걷다가 넘어져 뼈가 부러졌고, 움직일 수 없어서 헬기가 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여성의 상태는 심각해보였다.
전혀 움직일 수 없고 고도가 높고 하늘은 흐리고 바람도 많이 부는데다가 땀은 식어 체온이 떨어지니 침낭을 꺼내서 덮고 1시간도 넘게 구조 헬기가 오기만 마냥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고의 순간에 일행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녀도 그동안 혼자 여행을 했으나, 오늘 마침 그를 만나 같이 걸었기에 그나마 그의 도움으로 구조를 요청할 수 있었던 것이다.
순간 아찔했다.
이기적인 생각일 수는 있지만, 내가 저 상황이었다면…???
아무도 없이 혼자 가다가 사고를 당했다면???
이곳은 오지 중의 오지여서 그동안 길을 걸으며 전파가 잡히는 경우는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휴대폰을 꺼내보니 역시 전파가 터지지 않았다. 통화 불능 지역…
그의 휴대폰도 이곳에서는 전파가 잡히지 않았고, 따라서 근처 언덕에 올라가 휴대폰을 위로 들어 간신히 전파 하나가 잡히는 곳에서 힘들게 통화를 성공했다고 했다.
그녀가 넘어져 다친 바로 그곳에서 나도 똑같이 넘어졌다.
나는 운이 좋았다. 갖고 있던 등산스틱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잠시 후 헬기가 이쪽으로 왔고 그와 나는 색깔있는 옷, 수건을 들어 흔들었고 헬기는 우리를 발견하고 근처에 착륙했다.
묘한 경험을 한다. 이곳까지 와서…
구조 요원들은 헬기에서 내려 그녀에게 주사를 놓고 헬기로 수송 준비를 한다.
그녀는 그와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우리는 그녀의 쾌유를 빌고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부러진 뼈를 맞추는 지, 멀어져가는 우리 뒤로 그녀의 너무도 고통스러운 비명이 들려 소름이 끼쳤다.
당시 시간이 오후 2시 30분이었다.
나는 애초에 시간을 맞출 수 없어 느긋하게 걷고 있었지만, 그 스웨덴 남자는 이 사고가 없었으면 제때에 도착할 수 있었을텐데 이제 우리는 둘다 천천히, 안전히, 조심조심 길을 걸었다.
사고와 구조의 현장을 직접 보고, 그녀의 고통에 찬 비명을 들어 오금이 저려서 빨리 가고 싶어도 걸음이 빨리 떨어지지 않고 한발한발 신중히 내딛었다.
그녀와 헤어지고 약 1시간을 더 걸어 Vakkotavare에 도착했다.
STF Hut은 내일 open을 준비하고 있었고, 나와 그는 맘 편히 약 23시간을 저 강 주변에서 보내기로 했다.
23시간을 어떻게 보내나, 이곳에서 무엇을 하나 싶었는데 그것도 괜한 우려였다.
이번 여행 전반기를 돌아보고 진정 여유있게 즐길 수 있던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텐트를 치고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은 나는 깜짝 놀랐다.
이게 사람의 발인가, 이게 사람의 맨살인가?
(극혐 주의)
나중 이야기지만 한국에 돌아와 저 밀린 살들은 굳은살이 되어 모두 더 벗겨져 떨어졌고, 새끼발톱은 검게 죽어 빠져버렸다. 🙁
영광의 상처라고 해야할까? 🙂
아침에 보트, 끝없는 언덕길과 평지길, 넘어짐, 사고의 목격 등 육체적,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하루였다.
원래 오늘 시간에 맞춰 Vakkotavare에 왔으면 버스, 배를 타고 목적지인 Saltoluokta STF Mountain Station에 갔을 것이다.
STF Mountain Station은 Wi-fi가 되므로 가족, 지인들에게 연락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잠들기 전에 침낭속에 들어가 오늘을 기록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미 이곳에서 보일 것, 못보일 것 다 보였으니 뻔뻔함을 무릅쓰고 아름답지 않은 마무리 영상일기를 공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