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쿵스레덴 (KUNGSLEDEN) – 13일차
2016년 6월 27일 (월요일)
- 경로: Stuor Dahta 호수에서 Kvikkjokk STF Mountain Station까지
- 걸은 거리: 13.1 km (iPhone 건강 App)
- 걸은 시간: 08:20 ~ 13:00
- 난이도: 하
- 강평: 마감은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출처: http://www.distantnorth.com/destinations/kungsleden-trail-parte-to-kvikkjokk/
Pårte에서 약 1시간 30분쯤 약간의 오르막을 걷다보면 뜬금없이 호수가 나온다.
지대가 낮은 곳도 아닌 것 같은데 호수가 있고 이 또한 절경이다.
어제 하루 야영한 곳은 이 호수가이다. (위의 지도에서 동그라미 표시 부분)
오늘이 걷기 마지막 날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나가면 집으로 돌아가고 싶고, 집에 오면 나가고 싶은게 사람의 마음이던가?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다.
어서 이 여행이 끝나서 가족 품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과
다른 한편으로는 이 길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으니…
열흘이 넘는 기간동안 아침에 눈뜨면 밥 먹고 걷고, 때 되면 또 밥먹고 걷고, 저녁이 되면 텐트치고 또 밥 먹고 자고를 반복했었고 그 생활이 일상이 되었는데 그게 오늘로 마무리 된다니 매우 갑작스러운 느낌이다.
길을 걸으면서 한동안 이 호수의 풍경이 계속 함께 했었다. 그러다가 숲길로 들어서면 그 풍경은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그동안 걸으면서 가족, 친구, 회사 동료, 선후배 등에게 영상편지를 찍었다. 영상편지라고 해서 거창한 것은 아니고 그냥 걸으면서 당시의 느낌과 안부인사 등을 스마트폰 셀프 동영상으로 기록한 것이다. 후에 그 영상편지를 보낼지 그냥 보관하고 있을지는 나중 이야기고… (나중에 제 정신에 보면 손발이 오그라들수도 있는 영상들이라…)
여정이 마무리되어가며 생각해보니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깝지만 가장 어색하고 쑥스러운 대상이 부모님과 형제들인 것 같다. 살면서 그들에게 편지나 엽서도 제대로 써 본 적이 없는데 모습과 목소리를 담은 진지한 영상편지라니… 하하…
이제 도착의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부모님과 형제들을 향한 나의 모습과 목소리를 카메라에 담았다.
양가 부모님께, 지금은 다 결혼하여 다 따로 살고 있는 동생들에게, 처형 식구들에게, 처남 식구들에게…
사실 그 영상편지는 아직 전부 다 그들에게 보내지는 못했다.
별 것 아닌데 이상하게 용기를 필요로 한다.
조만간 용기를 내야겠다. 더 미룰 이유도 시간도 없는 것 같다.
미래의 어느 시점이 되면 어떤 느낌일까를 상상할 때가 있다.
가령 결혼전에 상상하기를 내가 결혼해서 첫날밤에 신부와 단둘이 있을때 어떤 분위기, 어떤 로맨틱한 연출이 있을까를 상상하곤 했다.
내 상상속에선 최고급 호텔룸에서 둘이 함께 분위기있게 와인을 마시다가 내가 신부를 번쩍 안고 침실로 가는 로맨틱하며 과격한 모습이었는데 현실에선 전혀 그렇지 않았다. 🙂
또다른 상상으로는, 처음으로 아내의 임신 소식을 들을 때 나는 어떤 느낌이고 어떤 기분이 들런지, 어떤식으로 그 감동을 표현할 지였다.
이런 상상을 했던 것은 결혼 한참 전이고 지금 생각하면 불과 얼마 전 일인 것 같은데 벌써 한참 전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요즘 가끔 상상하는 미래의 어느 시점은 딸의 결혼식에 내가 딸의 손을 잡고 입장할 때의 울컥한 순간과 처음으로 손주의 울음소리를 들을 때와 손주를 내 품에 안을 때의 그 벅참의 순간이다.
상상일 수 밖에 없는 것은 내가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것은 상상으로 밖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상상들 또한 지금은 미래의 상상이지만 어느 순간 정신차리고 보면 과거의 일이 되어있겠지.
Kungsleden 길을 걸으면서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에 대한 상상을 하곤 했다.
어떤 느낌일까, 어떤 기분이 들까?
온몸에 전율이 흐르며 격한 감동을 느끼게 될까?
아니면 그냥 덤덤히 별 일 아닌 듯이 뚜벅뚜벅 걸어들어가게 될까?
엄청나게 큰 기대를 하고 온 것은 아니지만 머리속에, 혹은 마음속에 있는 나와 나의 모든 관계들의 과거와 미래를 추스리고 정리하고 계획하는 것이 어느정도 이루어졌음을 인지하고 흡족해할까?
아니면 그저 걸었을 뿐 내적인 변화를 바라기는 무리일까?
아님 변화는 있되 느껴지지 않고 속에 씨앗을 품고만 있는 상태일까?
지금으로선 도착의 그 순간 내 마음이 어떨지, 내 감회가 어떨지 짐작할 수 없고 상상은 상상일 뿐 그 또한 내정하거나 기대하지 않고 그냥 담담히 맞이하기로 살짝 다짐해본다.
길은 점점 문명, 사람의 흔적이 명확히 묻어나오고, 호수를 출발한지 약 4시간 30분만에 나의 최종 목적지인 Kvikkjokk STF Mountain Station 에 도착했다.
도착시간은 정확히 오후 1시였다.
상상한데로, 혹은 예상한데로 엄청난 감동과 희열보다는 약간 당혹스러움, 약간 어리둥절함이 솔직한 심정이다.
한편으로는 살짝 허탈하기도 했다.
이 기분은 연말 재야의 종소리를 들을때와 비슷하다.
새해가 되고 재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모두가 환호성을 지를때면 뭔가 하늘에서 무지개가 쏟아지며 작년과는 다른 명확한 희망과 환희의 징후가 보일 것 같이 기대하지만 막상 그 순간 눈에 보이는 변화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느낄때의 뭔가 허전함…
어쨌든 나는 Abisko Turistation에서 이곳 Kvikkjokk 까지 약 200km를 탈없이 무사히 내 두 발로 완주하였음에 스스로 자축하며 진심으로 즐거워하였다.
이런 경험은 지금까지 살면서 한번도 시도해본 적도, 달성해본 적도 없는 나 스스로의 도전이자 성취였다.
Reception에 들어가 Wi-Fi에 연결해 가족과 지인들에게 여행의 완료를 알린다.
아내와 아이들은 나의 무사 완료를 축하해주었고, 남은 일정도 잘 마무리하여 무사히 귀국하기를 바래주었다.
Facebook 등을 통해 내가 스웨덴에 간 것은 알았는데 그곳을 왜 갔는지, 그곳에서 무엇을 하는지 등은 명확히 알지 못했던 지인들은 그제서야 나의 걷기 여행에 대해 듣고 감탄 반, 어이없음 반의 반응들을 보였다.
텐트 1박 비용, 내일 아침 레스토랑 이용 등을 결제하고 Kvikkjokk 주변을 돌아본다.
Kvikkjokk는 대형 STF Mountain Station으로 그동안의 시설들과 좀 달랐다.
일단 좀 인심이 박하다.
Wi-Fi 비번도 공개되어있지 않고 숙박 등을 신청한 사람이 요청해야 알려주는 것 같다. (Abisko와 Saltoluokta는 그렇지 않았는데…)
그리고 그동안 모든 STF 숙소의 요금은 텐트 1박에 회원은 100 SEK (=15,000원) 이었는데 이곳만 150 SEK (=22,500원)이다.
그래서 왜 가격이 다르냐고 물었더니 이곳이 시설이 더 좋고 여러 좋은 서비스가 있어서 가격이 더 비싸다는 대답이다.
어쨌든 여행의 마무리하는 곳에서 그동안과 좀 다르게 인심이 후하지 않아 푸근했던 마음이 좀 떨떠름해졌지만 이곳의 좋은 시설을 잘 활용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동안 하루 종일 걸었는데 오후에 걷지 않고 어딘가에 머무르고 있으니 뭔가 많이 어색하다.
아직은 몸도 마음도 걸음을 멈추는 것에 대비가 안되어있는 듯 하다.
계속해서 갑작스러운 느낌이다. 갑작스러운 마감…
텐트를 치고, 뜨거운 물이 펑펑 나오는 샤워실에서 샤워도 하고, 그동안 밀린 빨래도 해서 drying room에 말리고 인덕션으로 요리를 해서 먹는다.
이제 스웨덴에서 백야 아래에 텐트에서 자는 마지막 밤이 되었다.
멀리 떨어져있지만 우렁차게 들리는 강물 소리를 자장가 삼아 여행을 돌아보고 스스로 자축하며 단잠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