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천태만상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선다. 아이들은 꿈나라다. 수위아저씨가 인사를 하신다. 연세가 지극하신데 항상 일어나셔서 너무 극진히 인사를 하시고, 꼭 ‘좋은 하루 되십시요~’라고 기원도 해주시는데 나도 함께 인사를 드리지만 어르신께 인사를 받기가 부담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길을 걷는데 겨우내 황량했던 나무에 꽃이 핀게 보여 카메라를 들이댄다. 이게 무슨 꽃이지? 매화인가? 어제만해도 없던 것 같은데 밤새 투둑투둑 피어났나보다. 혹시 다른 나무도 꽃이 피고있나 싶어 고개를 들어보니 목련의 꽃몽우리가 올라오고 있다. 봄이 오고 있다. 아파트 단지를 걸어 지하철 역으로 가는데 길에서 담배를 피며 걷는 아저씨가 있어 잽싸게 추월을 해서 걸어간다. 요즘 날씨가 참으로 좋다고 새삼 느낀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중국에서 나무를 덜 때서 중국 먼지가 줄어들었나? 지하철 위에 있는 백화점의 광고판 모델이 활짝 웃고 있다. 본인 사진이 저렇게 크게 걸려서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면 어떠 느낌일까? 지하철에 가까이 가는데 마을버스에서 사람이 내려 우르르 몰려간다. 한줄로 운행하는 에스컬레이터가 있는데 이걸 탈지 말지 항상 고민이다. 타면서 느긋하게 내려가고 싶은데 혹시 내 뒤에 누군가 있으면 천천히 가는게 부담된다. 한줄 에스컬레이터라 내가 걷지 않으면 그 뒤의 사람은 더 빨리 갈 방법이 없다. 오늘도 고민을 하다가 에스컬레이터 옆의 계단으로 내려간다. 어제도 비슷한 고민을 하며 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매일매일 메멘토가 된 것 같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 신용카드를 지하철 개찰구 리더에 대고 들어간다. 그동안 이용한 교통요금이 찍힌다. 음… 교통요금이 꽤 많이 나오겠군. 회사가 집 앞이라 전에는 교통요금이 zero였는데 파견을 나가면서 월 8만원 정도 교통요금이 나간다. 이 비용을 회사에 청구해야하나 라고 의문이 든다. 오늘은 헛갈리지 않고 지갑을 꺼내 신용카드로 요금을 처리했다. 며칠 전에는 회사 카드키를 꺼내어 지하철 개찰구 리더에 대고는 왜 문이 안열리지 라며 당황한 적이 있다. 물론 그 반대로 회사에서 신용카드를 대고선 안열린다고 당황한 적도 있다. 치매인가? 처음에는 지하철로 어떻게 목적지까지 가야할지 어리둥절했지만 이제는 최적의 경로를 안다. 개찰구로 들어가 왼쪽 계단으로 내려가서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서 선다. 마침 지하철이 딱 맞춰 도착한다.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집에서 10분 일찍 혹은 늦게 나오는 것에 따라 지하철 안의 사람 수가 엄청 차이가 난다. 오늘은 5분 일찍 나왔더니 사람들이 별로 없다. 그 문으로 타서 맞은 편 문가로 간다. 내가 탑승한 곳부터 하차 이전 구간까지 계속 아까 그 문으로 열리다가 내가 내리는 곳에서 방향이 바뀌어 문이 열린다. 이곳에 서 있으면 내릴때까지 타고 내리는 사람들에게 치이지 않고 편하게 갈 수 있다. 사람들이 많아 자리에 앉을 생각은 하지도 않고 안 열리는 문에 기대어 책을 읽으며 간다. 가다가 이쪽 문으로 사람들이 조금씩 이동하면 아~~ 도착하려나보다 하고 책을 집어넣고 내릴 준비를 한다. 깔맞춤 자리여서 문에서 내리면 바로 에스컬레이터가 있어 갈아타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위해 어깨를 부딪히며 뛰는 사람, 에스컬레이터를 타기엔 사람이 너무 많아 포기하고 계단을 오르는 사람, 걷는 사람, 뛰는 사람, 오른쪽으로 가는 사람, 왼쪽으로 가는 사람. 어쨌든 위로 올라 갈아타는 곳으로 간다. 사람이 길게 늘어서있다. 왼쪽으로 조금 가면 역시 깔맞춤 자리가 되는데 오늘은 그쪽으로 가기가 여의치 않다. 지하철이 올때가 되었는지 사람들이 많이 서있어 통로까지 사람들로 가득하다. 내리는 사람, 타는 사람, 위치를 교환하고 지하철 안에 들어간다. 이번에는 탄 쪽 방향에 서있어야한다. 내가 내리기 전까지 맞은편 문이 열리고 내가 내리는 역에서 이쪽 문이 열린다. 다시 책을 꺼내 보면서 출근을 한다. 역시 이번에도 사람들이 많다. 고개를 들어 흘낏 보니 스맛폰으로 게임을 하는 사람, 웹툰을 보는 사람, 뉴스를 보는 사람, 책을 보는 사람, 전화를 하는 사람, 잠을 자는 사람. 다양하게 이동을 한다. 순간 어디선가 가스 냄새가 올라온다. 순간 흠칫하지만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아무일도 없는 듯이 아무런 기척도 없다. 다들 비슷한 생각일 것이다. 코는 민감하면서 둔감하다. 땀냄새, 화장품 향기, 향수 향기와 섞여 어느사이엔가 그 가스 냄새도 사라지는지 익숙해지는지 무감각해진다. 날이 많이 더워졌다. 십여분 이동 후에 다시 깔맞춤 자리로 내린다. 계단을 타고 올라 개찰구를 통해 나간다. 긴 복도를 지나면 해바라기가 즐비한 꽃가게를 지나 마약김밥집을 지나 다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밖으로 나간다. 병원 광고에 어느 병원 의사 사진과 약력이 나오는데 아마 내 학교 동기나 후배인 것 같다. 공대를 다니다가 재수하여 다시 의대를 갔다보다. 잘했네~~ 라는 생각을 한다. 요쿠르트 파는 아줌마가 요쿠르트를 싣고서 전기차로 이동한다. 내 딸래미가 그토록 타보고 싶다고 조르는 그것이다. 얘야~~ 나도 타고 싶구나. 아침을 못먹고 출근한 직장인들이 줄 서서 토스트를 먹는다. 골목에 가득한 흡연자들의 담배연기를 피해 조금 우회하여 간다. 이제 또 업무 시작이구나 싶다. 어제 휴대폰 카메라의 봉인을 뗀 게 생각난다. 보안때문에 회사에 들어갈 때에는 카메라 봉인을 해야한다. 봉인을 붙이고 다시 회사 카드키를 대고 개찰구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로 들어간다. 매일 일어나는 일인데 오늘도 뭔가 조금 새롭게 하루 업무를 시작한다. 메멘토, 메멘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