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추워 빨래방에 가다
아파트 빨래 배관과 세탁기 안이 얼어 빨래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공동주택이라 우리집만 어찌저찌 녹인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우리집은 녹았어도 위층이나 아래층이 얼어있으면 물이 역류하거나 아래로 샐 수 있는 상황이라 관리실에서 빨래 자제를 안내했다고 한다.
하루에 나오는 빨래의 양이 어마어마하다.
아내가 하루이틀 날 풀리기를 기다려보고, 간단한 것들은 손빨래 하고 말려보지만 큰 옷들은 할 수가 없고 나날이 입을 옷보다 세탁할 옷이 더 많아지고 있다.
우리 선조들을 정말 고생 많이 하셨다는 생각이 절로 들고, 살기 좋은 때에 태어난 것을 감사해야겠다. (이 추운 날 더운 물도 없거나 부족하게 손빨래를 했을 것 아닌가… 집안 일이 다 어렵지만 가장 어려운 게 빨래인 것 같다.)
아내가 더이상 미룰 수는 없다며 24시간 셀프빨래방으로 가자고 한다.
아마 우리말고도 빨래방에 줄 서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단다. 뉴스에서도 해당 진풍경을 담아 방송을 했다고도 하고…
저녁 9시 너머 느지막이 근처 빨래방을 검색하여 찾아 갔다. 집 바로 근처에는 없고 주변 한 2킬로미터 내에 몇곳의 셀프 빨래방이 있었다. 셀프 빨래방은 전에 제주도 여행 때 이용해본 적이 딱 한 번 있다.
저녁 9시면 그리 이른 시간은 아닐텐데 우리 같은 집이 한두집이 아닌지 빨래방의 모든 세탁기는 풀가동 중이고 그 기계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그 다음 예약고객이 줄을 서있는 상황이었다. 헐…
은행처럼 번호표를 발급하는 것도 아니고 눈치껏 혹은 물어물어 순서를 알고 기다려야했다. 다시 검색해서 다른 곳을 가보았는데 그곳도 상황이 마찬가지다. 이번 한파로 다들 울상을 짓고 있지만 빨래방 주인은 미소를 짓고 있지않을까 생각이 든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탁하면 발을 씻으라 했던가…
빨래방 시설은 훌륭했다. 난방 잘 되어있고, 좌석과 테이블도 있어 앉아있을 수 있으며, TV를 보며 무료함을 달랠 수도 있고, 어떤 곳은 네스프레소 유료 자판기도 있어 커피를 뽑아마실 수도 있고, 무료 wi-fi도 제공되어 부담없이 자유롭게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기다림을 달가워하지 않는 우리 부부의 머리에 동시에 떠오른 단어가 있었으니 우리집의 만능해결사 ‘새벽형 인간’ 🙂
(도와줘요 번개맨~~ 도 아니고, 도와줘요 새벽형인간~~ 인건가?)
결국 새벽에 다시 오기로 했다. 새벽에도 문전성시를 이룬다면 다른 방법이 없이 줄을 서서 차례대로 해야겠지만…
새벽에 부부가 둘이 함께 올지, 새벽형 인간만 혼자 올지를 물어보니 집에는 새벽형 인간이 한명만 있다고 그 한명만 오는게 가장 좋지 않겠냐고, 이럴때에만 사랑한다고 애교를 부리는 아내를 살짝 흘겨보며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5시 30분에 빨래방에 도착한 새벽형 인간은 그보다 더 새벽형인 어느 아주머니 한 분만을 뵈었고, 여유있게 동전을 교환하여 빨래와 건조를 마무리하고,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와 아내의 환대를 받았다.
겨울은 추워야 맛이지만 이젠 3한4온 정도로 완급이 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겨울은 추워도 너무 춥잖아~~~
모처럼 출동했던 새벽형 인간은 에너지가 고갈되어 낮에 두번이나 테이블에서 쪽잠을 자고, 저녁 9시에 씻지도 않고, 옷도 갈아입지 않고 침대에 골아떨어져 그 다음날 정말 새벽 (3시 50분)에 일어나 거실 테이블에서 혼자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