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잔치] 처음 만들어보는 홍합탕 (추가로 굴전)
지난 주에 농어회와 조개찜을 너무 맛있게 먹어서 이번주에는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가성비 최고인 조개류(?)가 생각났다. 그 주인공은 ‘홍합’
어렸을 적에 초등학교 앞 리어카에서 많이 사먹었던 홍합탕… 요즘은 짬뽕을 먹어야 맛을 보게 되는 추억의 그 맛.
어제 일요일 점심 즈음에 이 홍합탕 메뉴를 제안하니 아내는 그리 기꺼워하지 않는다. 이유는 아이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과 손질하는 수고가 많고 처리물이 많이 나온다는 효율성 측면의 사유들이다.
수고야 뭐, 내가 다 하면 되지.
옷을 챙겨입고 근처 마트로 간다. 조개류가 부피는 커도 막상 알맹이 양은 적어서 욕심껏 왕창 사 올 생각이었는데, 일요일에는 물건이 들어오지 않는다며 마지막 남은 한 팩 (3,900원)을 바구니에 넣고, 간 김에 자연산 굴도 사왔다. 그 순간 내 머리속에는 벌써 점심 메뉴가 다 그려졌다. 홍합탕과 따뜻한 굴전, 거기에 고량주 한잔. (집에 술이 맥주와 고량주 밖에 없었는데, 이 메뉴에 맥주보다는 고량주가 깔맞춤으로 생각되었다.)
근처 다른 마트에도 가 보았는데 그곳에도 같은 이유로 홍합은 없었다. ‘이 양으로는 부족한데’ 라며 불안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는데 막상 뜯어서 펼치니 양이 결코 적지 않다.
홍합 내용물을 보자 마자 앞서 아내의 말이 바로 마음에 와 닿았고,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을까 살짝 후회가 엄습했고, 한 팩만 산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손질의 번거로움 때문이었다.
일단, 홍합에서 뭔가 나오는 것도 많고, 겉에 묻은 것도 많다. 이 추운 겨울에 더운 물로 닦을 수도 없다. 고무장갑을 끼었지만 손이 떨어질 듯 차갑다. 닦아도 닦아도 뭔가 이물질이 계속 나온다. 이게 그물인지, 수염인지 뭔가 실 같은 게 껍질 사이에 끼어있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걸 ‘족사‘라고 한단다. 이걸 제거하는게 관건인데, 잘못하면 안의 내용물까지 함께 빠져나와서 낭패가 되기 쉽다.
이렇게 찬 물로 몇번을 닦으니 그나마 부유물이 사라졌다. 이제 껍질을 닦을 차례다. 껍질에도 뭔가 많이 붙어있다. 찾아보니 껍질끼리 부딪혀 닦으면 잘 닦인다고 하던데, 그러다가 부서질 것 같아서 안쓰는 치솔을 찾아서 골고루, 정성껏 닦아준다. 문득 어렸을 적에 용돈벌이 아부지 구두 닦았던 때가 생각났다. 홍합을 닦다가 과거의 추억에 잠기기도 한다. 하하…
손도 곱을 정도로 차갑고, 허리도 아프고, 주변엔 물 투성이고, 옷에도 물이 다 튀겨있고, 그릇은 종류별로 다 나와있다, 주방에 비린내가 진동한다. 주변이 아수라장이다. 아~~ 왜 이걸 시작했을까… 그래서 사람들이 돈 내고 간단히 사먹는구나.
어쨌든 한참을 낑낑대며 문대고, 닦아 깨끗하게 손질된 홍합을 보니 내 마음이 다 시원하다.
요리의 90%는 준비과정이 아닐까?
아르키메데스가 지렛대와 받침만 제공해준다면 지구도 들어올리겠다고 했던가? 누군가 최고의 요리 재료를 제공해준다 해도 나는 제대로 요리를 할 능력도 자신도 없고, 동일한 재료가 제공된다고 해도 같은 요리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적어도 요리의 90% 시간과 노력은 준비 과정에 있다고 본다.
재료가 다 구비되어있을 때 말 그대로 ‘요리한다’는 가장 재미있는 시간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리라… (무엇인가, 혹은 누군가를 가지고 놀 때 ‘요리한다’는 비유를 하지 않는가…)
이제, 그야말로 ‘요리’하는 시간이 왔다. 즐거운 시간이 온 것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간단하다. 무, 파, 마늘 등을 넣고, 손질한 홍합을 넣고 끓이면 된다. 거품이 생기면 걷어내서 깔끔한 국물을 만드는게 관건이고, 너무 오래 끓이면 홍합이 질겨지니 한번 끓어서 홍합 껍질이 벌어지면 끄면 된다. 기호에 따라 청양고추 등을 넣어 칼칼하게, 혹은 구수하게 만들어 먹으면 된다.
재료를 찾아보니 지난 김장 때 가져온 무가 있어 숭숭 잘라 넣는다.
대파도 씻어서 숭숭 잘라 넣는다. 신난다.
마늘은 편마늘을 넣어야하는데, 집에 마늘은 다진 마늘만 있어서 그걸 넣었다.
양은? 모른다, 대충 넣는다.
청양고추 2개를 세등분하여 물 위에 숭숭 던져넣는다. 맛술을 살짝 넣으라고 해서 맛술을 한 스푼 쯤 넣고 이 외에 더 넣는 것은 없다. 뚜껑을 덮고 가스불을 약하게 켠다. 오늘 메뉴는 홍합탕 하나가 아니라 굴전과의 콜라보 메뉴이다. 굴전이 완성되는 시간에 맞춰 홍합탕이 끓기를 바라는 것이다.
점심에 이렇게 홍합탕과 굴전을 먹고, 국물이 남아서 저녁에는 아내가 어묵을 넣고 고추가루를 풀고, 우동을 넣어서 얼큰한 홍합 어묵 우동탕을 만들어 먹었다.
겨울에 나를 행복하게 하는 네가지가 있다면, 감, 굴, 귤, 매생이…
(사실 장 볼 때 매생이도 사왔다, 굴을 넣은 매생이 국을 해먹기 위해…)
다음에는 매생이국에 도전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