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전등사 산책 (2020년 1월 30일)
맛있게 식사를 하곤 남문을 통해 전등사로 올라간다. 입장료가 있다. (인당 3천원)
전등사는 여러번 와보았다…
기억은 하지 못하지만 어머니께서 만삭 때 이곳에 오셨다가 그 후에 몸이 안 좋아지셔서 고생하셨다고 하고… 🙁
초등학교 3학년 때 보이스카우트에서 강화도 전등사에 들렀다가 마니산에 올랐던 기억이 있고,
강화도 함허동천은 캠핑으로 여러번 왔었고,
2011년 혹한 때 가족들과 함께 전등사에 들렀다가 함허동천에서 라면 끓여먹은 아주 짜릿한 기억도 난다. 그때에는 동문으로 들어왔었다.
대웅전 옆의 샛길을 따라 오르면 삼성각이 나오고 그 위쪽에는 정족사고가 있다.
사고란 고려 및 조선시대에 나라의 역사 기록과 중요한 서적 및 문서를 보관한 전각을 일컫는 말이다.
옛 선조들은 특히 사고 안에 따로 역대 왕조실록을 보관한 곳을 사각(史閣)이라 해서 그 보존에 힘을 썼다. 실록이 처음으로 사찰에 보관되었던 것은 고려 때인 1227년(고종 14)의 일이다. 이때 고려 왕실에서는 합천 해인사에 사고를 마련하여 실록을 보관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궁궐의 춘추관과 충청도 충주, 경상도 성주, 전라도 전주에 사고를 설치했다. 이것으로 춘추관 외에 이들 충주·성주·전주의 사고를 3대 사고라 해서 여기에 역대 실록을 분산 보관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춘추관과 충주 및 성주의 사고가 소실된 반면 전주의 사고만 유일하게 보존되어 그곳의 실록 등을 한때 내장산으로 옮겼다.
<중간 생략>
본래의 정족산 사고는 1931년 무렵 주춧돌과 계단석만 남긴 채 없어졌다. 다만 사고에 걸려 있던 ‘장사각’과 ‘선원보각’이라는 현판만 전등사에 보존되어 있어 당시의 실상을 알려주고 있다. 폐허가 되었던 장사각 건물은 1999년 복원되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조선왕조실록은 한 왕조의 역사적 기록으로는 가장 긴 시간에 걸쳐서 작성되었고, 가장 풍부하면서도 엄밀한 기록을 담고 있다. 또한 국왕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조선인들의 일상적인 생활상을 자세히 보여 주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활자로 인쇄되었고, 보관과 관리에도 만전을 기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조선왕조실록은 1973년 12월 31일에 국보 제151호로 지정되었고, 1997년 10월 1일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 – 출처 ‘전등사 홈페이지‘
정족사고에는 자물쇠가 잠겨져있어 들어가볼 수는 없었고, 그 옆의 담길을 따라 한바퀴 돌며 주변을 감상한다. 호젓하니 경치가 매우 좋아 뒷짐지고 슬슬 한바퀴 돌기에 좋다.
한바퀴 돌고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북문까지 올라가본다.
사실 처음에는 입장료 (인당 3천원)와 주차료 (2천원)을 받아서 살짝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여유로운 전등사와 산성 따라 멋진 길을 걷고, 산성 넘어 바라보는 풍경이 너무도 멋있어 저절로 힐링이 된 즐거운 전등사였다.
모처럼 호젓하고 평안한 사찰 나들이였다.
이제는 동막해변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