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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 무협] 소설 천룡팔부(김영사)를 다 읽다.

오늘(2021년 3월 1일)로 신필 김용 선생의 장편무협소설 ‘천룡팔부’ (김영사) 10권을 모두 다 읽었다.

전에 쟁선계라는 우리나라의 걸출한 무협소설에 대해 포스팅했는데, 나의 그리 많지 않은 무협소설 독서 역사에 대해 우선 얘기해보자.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나는 집 근처 독서실을 등록해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아침에 가서 점심 때까지 공부를 하고, 집에 와서 점심을 먹고선 다시 독서실에 가서 공부를 하고, 저녁이 되면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다시 독서실에 가서 공부를 하다가 밤에 집에 왔던 정말 성실한 열공모드 학생이었다.

힘들었지만 그렇게 공부를 해야한다는 선배의 말을 듣고 힘든 줄 모르고 공부를 자발적으로 열심히 했다.

당시에는 방학에도 학교에 가서 하는 여름 보충수업이 있었는데 그때 어떤 친구가 열심히 독서를 하는 것을 보고선, 뭘 그렇게 열심히 보냐니까 요즘 인기있는 무협소설이라고 하더니 자기 다 보고 나서는 내게 빌려준단다.

표지를 보니 남자인지, 여자인지 서생처럼 고운 외모의 사람이 있는 책이었고, 제목은 ‘소설 영웅문 제 2부 영운의 별’이라고 써있었다.

소설 영웅문 2부. 이 책을 읽은 사람은 이 표지에 가슴이 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표지는 아마도 소용녀일 듯.

며칠 후 친구에게서 전권 6권을 빌렸다. 중학교 때 삼국지, 초한지 등을 읽어서 중국 역사서(?)류는 읽는데 거부감이나 어려움이 없었다. 매일 독서실 강행군이 피곤해서 공부하다가 머리를 식힐 때 읽으려고 한권을 독서실에 가져가서 펼쳐보았다.

그 때 처음 느껴보았다. 독서삼매경을…

아침에 가서 점심 전까지 그 책을 읽고, 집에서 점심 식사 후에 독서실로 뛰어가서 정신없이 또 영웅문을 읽다가 집에서 저녁먹곤 다시 가서 밤 늦게까지 이 대하무협소설을 읽었다.

글을 쓰는 지금은 이 책을 읽은 지 한참이 되었고, 드라마 등으로도 접해서 기억하는 바가 복합적이지만 당시 처음으로 그 책을 미친 듯이 읽었던 당시의 떠오르는 소설 속 장면을 더듬어보면,

초반 이막수의 악랄함 (정이란 무엇이길래 생사를 가늠하느뇨…)

그런 이막수조차 꼼짝못하게 하는 황약사의 신출귀몰함

자세를 거꾸로 해서 머리로 통통 튀어다니는 독의 달인 구양봉의 괴기스러움 (사람 맞아?)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소용녀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

양과와 소용녀가 옥녀소심검법(이렇게 시간이 많이 흘렀어도 이런 이름을 다 기억하고 있다. 글을 쓰는 지금 책을 다시 찾아보지 않고 기억에만 의존해 쓰고 있는데 이 이름들이 다 기억난다, 신기하다. 이게 바로 신필 김용의 힘일 것이다.)을 익히는데 몸의 열기로 인해 들판에서 옷을 벗고 서로 보지 않은채로 익히는 장면의 두근거림… 🙂

강력한 이막수가 고묘에 쳐들어와서 둘이 힘이 부치자 양과를 내보내고 돌문을 닫아버리는데 양과가 죽어도 같이 죽겠다고 극적으로 돌문 안에 들어왔을 때의 가슴 벅참.

선녀와 같은 소용녀가 본의 아니게 검열삭제 장면에 처하게 되고, 오해로 인해 양과를 떠났을 때의 먹먹함.

양과가 육무쌍을 만나 바보 행세를 내며 다니던 알콩달콩함

양과를 사이에 두고 북개 홍칠공과 서독 구양봉이 초식을 전수하며 겨루고, 마지막에는 서로에게 감탄하며 부둥켜안고 호탕하게 웃다가 세상을 떠났을 때의 처연함과 감동.

구음진경, 타구봉법, 고묘파 경공 등으로 금륜법왕 제자(달이파와 곽도 – 아, 정말 신기하다, 이름이 다 기억나네…)를 물리쳤을 때의 통쾌함 (내가 바로 오랑캐다! – 이내만이!)

금륜법왕을 상대로 양과와 소용녀가 연애하는 것 같은 달콤한 기분으로 꿈을 꾸듯 포텐이 만발했던 옥녀소심검법의 카타르시스…

이 외에도 많은데 오늘 주제는 영웅문이 아니라 여기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오도록 하고, 영웅문에 대한 추억담은 후에 다시 하도록 하겠다. 🙂

어쨌든 이렇게 처음으로 접한 중국무협, 정확히는 신필 김용의 세상과 인물은 나를 사로 잡았고, 옆에 벼락이 쳐도, 시간이 가도, 끼니가 지났어도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책을 읽는다는게 가능하고, 실제로 내가 그랬다는 것에 경이를 느끼며 정말 한장 한장, 한권 한권을 아끼며 책을 읽었다. (책 한 권을 독파할 때마다 읽을 권수가 줄어든다는 것에 아쉬움을 느꼈었다.)

영웅문 2부를 먼저 봐서 곽정, 황용의 매력을 나중에 알게 되었고, 서독 구양봉은 괴인으로만 알았지 악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황용은 양과를 견제하는 비호감 인물로 생각되었고, 게다가 최강 민폐 캐릭터인 곽부의 엄마라니…

영웅문 2부를 정말 최고로 재미있게 봤고, 후에 1부 사조영웅전은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역시 매우 재미있게 봤고, 3부 의천도룡기는 왠지 앞서의 두 작품보다 생생히 머리에 그려지지 않았고 몰입이 되지는 않았다. (장무기 같은 기연과 우유부단한 캐릭터 별로 좋아하지 않음.)

친구들 사이에서도 영웅문 1~3부작 중 무엇이 최고이고, 가장 재미있는지, 가장 좋아하는지, 누가 가장 무공이 쎈 지를 두고 배틀이 벌어졌고, 이는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세상에서 계속되고 있다.

그렇게 영웅문 2부, 1부, 3부 순서로 보고나서 대학에 갔고 이런 무지막지하게 재미있는 소설을 쓴 김용이라는 작가가 궁금해 찾아보게 되었고, 그 신필 김용의 다른 소설도 찾아서 보게되었다. 학교 후배가 정말 재미있게 봤다는, 누군가는 김용 최고 걸작이라고 하는 소설 ‘녹정기’를 후배에게서 빌려서 보았다.

신필 김용의 초반 작품이라고 하는 영웅문이 독서삼매경이라는 말로만 듣던 기묘한 세상에 눈 뜨게 했는데, 영웅문보다 더 걸작이라는 ‘녹정기’는 그 이상의 삼매경에 빠지게 해줄테니 이 얼마나 즐거울까 라며 엄청 큰 기대를 갖고 보았는데 녹정기는 나를 그 삼매경 세상에 데려가지 못했고, 나는 보다가 졸기도 하고, 책을 봐도 기억을 못하기도 하며 억지로 억지로 끝까지 읽었다.

뭐가 문제였을까? 사람들이 그토록 걸작이라고 하던데, 걸작이되 영웅문과 다른 면에서 걸작인 건가? 이 걸작이 데려가는 세상은 삼매경 세상이 아닌 꿈속의 세상인가? (하긴, 이 세상의 걸작 중에 절로 꿈을 꾸게 하는 작품들이 많지.)

후에 녹정기도 드라마 등으로 많이 만들어졌다는데 나는 소설에서 재미를 못느껴서 녹정기 드라마에도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전혀 보지 않았다.

입맛이 썼다. 영웅문 같은 그런 몰입을 다시 갖게 해줄 그런 책은 없는거야??? 정녕 없는거야?

사실 아직까지 없다. 첫사랑이 가장 강력한 것은 첫사랑이기 때문이던가? 아직까지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 봤던 영웅문 2부, 양과와 소용녀의 이야기처럼 나를 매혹시키고 그 세상 안에 들어가 나를 잊었던 경험은 그 때 말고는 없다.

신필 김용 선생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았더니 역시 최고의 걸작 중의 하나라고 하는 ‘천룡팔부’에 대해 알게 되었다. 천룡팔부는 불법을 수호하는 여덟 수호신으로 우리가 익히 들어서 익숙한 용, 야차, 건달바, 아수라 등이 이에 속한다.

신필 김용 선생이 2018년에 타계했다는 소식을 듣고 애석해하며 천룡팔부 (중원문화사) 전권을 구입했다. 쟁선계에 이은 두번째 무협소설 전권 구입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천룡팔부 (중원문화사)는 사지 마시라, 보지 마시라. 번역이 엉망이다. (어떻게 엉망인지는 아래에서 비교하며 얘기하겠다.)

나를 다시 삼매경으로 데려가리라 생각한 천룡팔부(중원문화사)는 실망만을 주었다. 일단 오타와 탈자가 너무 많았고, 구성과 내용도 산만하고, 도대체 인물이 매력적이지도 않고, 장면 등이 생생히 떠오르지도 않았다. 신출귀몰하려면 동사 황약사 정도는 되어야하는데 그렇지도 않고, 괴팍하려면 서독 구양봉 정도는 되어야하는데 그렇지도 않고, 왕어언의 미모는 소용녀에 견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단지 그뿐이고 아무런 매력이 없는 민폐 캐릭터였다. 천하 4대악인도 그닥 악인스럽지 않고 그냥 깡패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은연 중에 영웅문 1부, 2부와 같은 노력, 성장하는 주인공을 기대했는지 단예, 허죽은 기연만으로 너무 쉽게 절대고수가 되는 것이 개연성이 없어보였다. 게다가 단정순의 막장 드라마라니… 어찌 모든 여인들의 남편은 단정순 그 사람이고, 그로 인해 주인공과 썸씽이 있을 법한 아리따운 여인들은 다 단예와 친남매가 된단 말인가. 마지막에 대반전으로 인해 친남매가 아님을 알게 되지만 이는 신선함이라기 보다는 답답함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막장 드라마에 너무 익숙해서 이런 플롯이 식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소설이 쓰여진 1960년대에는 매우 참신한 소재와 구성일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거기에 매우 기대를 가졌던 북교봉 남모용의 대치는 남모용이 너무 모자라서 태산명동에 서일필이었다.

어쨌든 녹정기에 이어 천룡팔부(중원문화사)도 집중이 되지 않았고, 보다가 졸다가, 졸다가 보다가 어쨌든 꾸역꾸역 끝까지 억지로 읽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엄지를 들어 찬사를 마다하지 않는 걸작이라는 천룡팔부가 이 정도란 말인가…? 인터넷을 뒤져보며 천룡팔부에 대한 감상과 비평 등을 찾아보았더니 중원문화사의 번역에 대한 내용을 보았고, 최근에 김영사에서 다른 번역으로 전집이 나온 것을 알게 되어 미친 척하고 다시 전질을 구입했다. (김영사 10권)

신필 김용의 천룡팔부 (김영사) 전권 세트

왠지 든든하고 흐뭇하다.

1권 북명신공부터 10권 결자해지까지로 구성되어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굉장히 재미있게 봤다. 첫사랑이 된 영웅문 2부 만큼은 아니었으나 굉장히 몰입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상황과 주인공에 빠져 입맛을 쩝쩝 마시며 봤다. 내 결론은 번역의 성의, 품질 차이라는 것이다. (중원문화사 천룡팔부는 갖다 버리세요..)

왼쪽이 중원문화사, 오른쪽이 김영사이다.

구성과 폰트는 위 캡처 사진을 참고해보자. 이 부분은 주인공 단예가 기연을 얻게 되는 부분으로 무량검 제자들에게서 도망치다가 소요파 옛 동굴에 들어가게 되는 장면이다. 왼쪽 중원문화사는 세밀한 묘사는 스킵하고 서술 위주로 하고 있고, 김영사는 세밀한 묘사가 포함되어있어 손에 잡힐 듯이 눈 앞에 장면이 펼쳐진다.

달은 이미 중천에 떠 있었다. 그는 곧장 서쪽으로 걸어갔다. 10리 정도 걸었을까? 어느덧 무량산 주봉의 뒷산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들려왔다. 앞쪽의 달빛을 받은 맑은 계류가 반짝이며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그는 목이 말랐던 참이라 개울가로 달려가 엎드린 채 몇 모금의 물을 들이켰다. 계곡에서 흐르는 물이라 그런지 뼈가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 그는 정신이 번쩍나는 걸 느꼈다.

  그가 막 몸을 일으키려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두런두런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발자국 소리가 자박자박 귓전을 파고들었다. 단예는 황망히 개울가에 엎드린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개울물이 있군. 물 좀 마시고 갑시다.”

천룡팔부 (중원문화사)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이다 보니 달은 이미 중천에 떠 있었다. 단예는 서쪽을 항해 내달렸다. 비록 무공은 모르지만 젊은 혈기 하나만으로 신속하게 발걸음을 내딛어 달려간 것이다. 10여 리쯤 가다 보니 벌써 무량산 주봉의 뒷산으로 접어들어, 전방에 있는 계곡에서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렸다. 마침 목이 컬컬하던 차라 소리를 찾아 계곡 쪽으로 다가가자 달빛 아래 아주 맑고 투명한 계곡물이 보였다. 계곡물에 손을 넣으려는 순간 저 멀리 계곡 바깥쪽에서 부스럭하는 마른 나뭇가지 소리와 함께 두 명으로 보이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단예는 재빨리 계곡 옆의 바위 뒤에 엎드려 꼼짝도 하지 않았다.

  둘 중 한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다.

  ”여기 계곡물이 있는데 물 좀 마시고 갑시다.”

천룡팔부 (김영사)

 

천룡팔부 (중원문화사) 번역 (위)

천룡팔부 (김영사) 번역 (위)

다시 반복하며 강조하면, 중원문화사에서 나온 천룡팔부는 갖다 버리자! 쓰레기 번역이고 성의도 없다. 내가 처음에 읽고 이 소설에서 감흥을 제대로 못 느낀 것은 내가 문제도 아니고, 김용의 문제도 아니고, 그 출판사와 번역가의 문제였던 것이다.

이제 책이나 번역 얘기가 아닌 소설 자체를 얘기해보자.

소설에는 세 명의 주인공이 있다고 하는데, 그래도 한명의 주인공을 꼽으라면 단예인데, 단예는 소설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것으로 봐서 소설을 이끄는 나레이터라고 해야할 것 같다. 단예는 대리국 왕자로 나오는데 후에 대리국 황제가 되고, 영웅문 1부와 2부에 나오는 천하오절의 남제 단황야 혹은 신조협려의 일등대사는 단예의 손자로 얘기된다.

단예 외에 허죽과 소봉도 주인공인데, 다들 이 소설의 핵심 인물은 소설 후반부에 퇴장하지만 그래도 가장 굳건하고 사건의 중심에 있는 것은 소봉(교봉)이라 생각할 것이다.

세 명의 주인공이 있는 것처럼 소설은 크게 보면 세 부분으로 나뉜다.

단예가 기연을 얻어 강해지는 사연과 여러 애인 혹은 동생들과 두 번째 주인공인 소봉(교봉)을 만나며 이루어지는 이야기

소봉의 고난, 위기, 극복, 그리고…

허죽의 기연과 성장 그리고 사랑

주인공 급은 아니지만 유탄지의 아자에 대한 고난과 외사랑, 헌신은 또다른 먹먹함을 주기도 한다.

허죽의 기연과 성장, 사랑은 극적 연출과 재미로는 최고이지만 허죽이라는 또다른 주인공이 왜 필요했는지는 소설 전체에서 봤을 때 의문이다. 천룡팔부 드라마를 보지 않았는데, 영웅적 기개와 처연함을 보이기 위해서는 소봉의 이야기만을 극화하면 좋을 것 같고, 비현실적으로 환상적인 무협적 요소를 극대화 하려면 허죽의 이야기만을 극화하면 좋을 것 같다. (마치 소오강호의 일부인 동방불패와의 대결에 포커싱하여 영화 동방불패가 만들어진 것처럼…) 단예의 이야기는 개그나 막장의 테마이다.

전에 넷플릭스에서 본 의천도룡기 2019에서 장무기가 조민의 신발을 벗기고 간지럼을 태우는 장면이나 (중국에서는 여성의 발이 매우 은밀한 부위로 여겨진다고 한다. 전후가 다를 수도 있는데 은밀한 부위로 여겨지기에 전족으로 꽁꽁 감춘 것도 있고, 전족으로 감추다보니 은밀한 부위화 된 것일수도 있겠다.), 녹정기에서 위소보가 합동 관계를 갖는 내용과 그로 인해 여러 부인을 거느리고(?) 다니는 것이나, 이 천룡팔부에서 단예의 아버지의 젊었을 적 풍류(?)로 인해 완전 막장이 이루어지는 것이나를 보면 신필 김용은 묘한 성적 로망을 갖고 있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는 전혀 근거는 없고 소설을 보면서 느낀 나만의 생각이다.

천룡팔부에서도 유탄지가 아자의 발을 핥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무래도 발에 대한 페티쉬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성(性)적 상징>

중국에서 여성의 발은 남편이 아니면 접촉할 수도 살펴볼 수도 없는 신체부위였다. 특히 맨발을 외간남자에게 보인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어서, 가슴이나 엉덩이를 만지는 행위보다도 금기시되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전족한 발은 신체의 그 어느 부위보다도 가장 은밀한 부분이자 성적 매력의 결집체로 이해되었다.

http://chinesewiki.uos.ac.kr/wiki/index.php/%EC%A0%84%EC%A1%B1 에서 인용

김용의 소설은 신문사에 연재를 한 작품이라 처음부터 전체를 염두에 두고 썼다기 보다는 즉흥적인 요소도 있을 것 같고, 이 천룡팔부는 세명의 주인공의 내용을 방대하게 다루다보니 이 내용이 왜 들어있지, 이게 왜 의미가 있는 것이지 하는 사항들이 좀 있다.

그리고, 인물관계가 대단히 복잡한데 묘하게 얽혀있어 잘 이해가 안 갈 수가 있고, 후에 다시 헛갈릴 수도 있어 정리해본다.

단정순: 소설의 거의 모든 막장적 배후에는 이 인물이 있다. 단정순은 단예의 아버지로서 부자간에 얼굴이 안 닮았다고 나오는 데 후에 진실이 밝혀진다. 좋게 말하면 풍류남인데 모든 이슈에는 이 인물의 풍류남적인 과거 행적이 다 연관되어있다. 김용 소설의 최고 미인 중 한명인 왕어언의 어머니 왕부인도 단정순의 애인 중의 한명이고, 왕부인은 단정순이 자신만 사랑하지 않음에 앙심을 품고 사대악인과 손잡고 단정순, 그 부인 (단예의 어머니), 애인들, 단예 등을 독으로 마비시켜 하나씩 하나씩 무참히 죽여버리는데, 그 과정 중에 단예에 대한 진실이 펼쳐지고 이 보다 더한 막장은 없다. (아임 유어 파더!!)

단예: 소요파의 무공인 북명신공과 능파미보를 기연을 통해 배웠다. 능파미보는 적의 공격을 피하는데 주로 쓰고, 북명신공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내공을 몸에 저장해서 내공에 있어서는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다. (문파 선배들이 손수 내공을 전수해줘서 역시 내공이 고강한 허죽도 단예에는 미칠 수 없다. 소봉도 단예를 처음에 만나 술을 같이 마시고 달리기는 하고 나서 자신의 내공이 단예에 미치지 못함을 인정했다.) 이 어마어마한 내공을 기반으로 단씨 가문에만 내려오지만 아무도 익힐 수 없었던 사기 무술인 육맥신검까지 익힌다. 거기에 독중지왕이라는 두꺼비도 삼켜버려 모든 독에 면역이 생겨있단다. 이렇게 단예는 경공 최고(능파미보), 내공 최고(북명신공), 공격 최고(육맥신검), 만독불침을 익혀 스펙 상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최고수로 생각되지만, 무술을 싫어하고 기연을 통해 우연히 익혔을 뿐 정식으로 스승을 통해 제대로 배우지 않았고, 응용에 관한 것은 익히지 않았다는 핸디캡을 씌워서 다른 인물들과 파워 밸런스를 맞추는 것 같다. 김용 소설에 종종 기연이 나오지만 단예의 경우는 정말 너무도 기연의 남발이 심한 것 같다. 초반에 소요파 동굴에서 옥상을 만나 능파미보를 접하고 몇번 따라해서 바로 익혀버리고, 북명신공도 마찬가지로 간단히 익히고, 쉽게 타인의 내공을 흡수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을 보고 이게 정말 김용 소설이 맞나 싶었다. 의형제를 맺는 허죽과는 같은 소요파 문파이기도 하다. 단예가 기연으로 알게 된 옥미인상은 소요파의 이추수를 모델로 만들어졌고, 이추수의 사형인 무애자는 허죽의 스승이 되고, 이추수의 사매이자 원수인 천산동모도 또한 허죽의 스승 격이고, 이추수도 본의아니게 허죽에게 내공을 전수하게 된다. 이추수의 손녀인 서하국의 공주는 허죽의 부인이 된다. 이추수는 사형인 무애자와의 사이에서 딸을 낳았는데 그 딸이 왕어언의 어머니인 왕부인으로서 위에서 말한 단정순과의 썸씽이 있었고, 후에 잔인함을 발휘하고 본인도 안좋은 결말을 맞이한다. (여기까지만 읽어도 참 복잡하고 막장이다.)

허죽: 허죽의 탄생에도 엄청난 비밀과 사연이 담겨있다. 허죽의 아버지는 소림사 방장인 현자이고, 어머니는 사대악인 중 둘째인 섭이랑이다. (당시에는 악인이 아니었으나 허죽을 납치당하고 나서 악인이 되었다.) 아버지는 자식이 생겼는 줄도 몰랐고, 어머니는 자식을 잃어버려서 생사여부도 모르고, 자식은 자신의 부모님이 누구인지, 역시 살아는 계신지도 모르고 어려서부터 소림사에서 자란다. 허죽을 부모의 품에서 뺏어서 소림사에 던져 놓은 사람은 바로 의형제인 소봉의 친아버지 소원산으로, 소봉이 돌 무렵 안문관에서 벌어진 송나라 무림인들의 무참한 살인 사건 때문이다. (크… 심하게 엮이고 엮여있다.) 정리하면, 소원산의 대원수는 현자 방장이고, 현자 방장은 허죽의 아버지이고, 허죽과 소봉은 단예를 매개로 의형제가 되었다. 이렇게 현자와 소원산이 원수가 된 데에는 모용박이라는 권력에 눈이 먼 또다른 자가 있었으니 모용박은 모용복의 아버지로 연나라 재건을 위해 송나라와 요나라의 싸움으로 어부지리를 얻기 위해 이런 모략을 쓴 것으로 가장 나쁜 캐릭터인데, 결국 소림자의 신비승려 무명승에 의해 개과천선하고 소원산과 함께 출가를 하여 함께 불법을 닦는다. 이런 비극에 본의 아니게 얽혀있는 허죽은 결국 기연을 통해 소요파 장문인인 무애자를 만나 무술과 내공을 전수 받아 소요파 장문인이 되고, 천산동모와 이추수도 만나 소요파 사형제들의 무공과 내공, 그리고 세력도 물려받게 되며 왕어언에 못지 않은 것으로 묘사되는 천하제일 미녀 서하국 공주와 결혼도 하게 되는 이 소설 최고의 행운남이다.

유탄지: 또 역시 가장 기구한, 불운한 인물 중 하나이다. 위에서 언급한 소봉의 비극으로 인해 소봉은 송나라인들과 오해가 쌓이고 원수가 되어 그동안 동료였던 사람들과 마지막 술과 함께 잔인한 싸움을 하게 된다. 그 장소가 취산장이란 곳으로 유탄지는 취산장의 주인인 유씨형제 중 한명의 자식이다. 유씨형제는 소봉의 가공할 무공에 취산장에서 목숨을 잃어 소봉은 유탄지에게 철천지 원수가 된다. 단예의 배다른 동생 중 한명인 아자는 소봉의 처제격인 인물인데 또다른 소요파 인물인 스승 정춘추의 영향으로 악독한 성격이 되고, 이 아자에 한눈에 반한 유탄지는 아자의 잔인함에 수시로 생명의 위협과 고통, 멸시를 받게 되지만 이를 행복으로 여기고 마지막까지 아자를 보필하며 그 과정 중에 기연을 얻어 신공을 얻지만 개방의 간악한 무리들에게 이용당하고 가장 마지막에는 소봉, 아자와 영원히 함께하게 된다. 머리에 철가면을 쓰는데 이는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를 생각나게 한다.

소봉: 한평생을 송나라인으로 알고 살았으나 우연한 기회로 본인이 거란인임을 알고 자신이 방주로 있던 개방에서 축출된다. 개방에서 권력을 탐하는 여러 인물들과 그 인물들을 휘두르려는 한 여인(이 여인 역시 단정순의 애인 중 한명이다.), 그리고 자신의 친아버지 소원산에 의한 여럿의 죽음 그리고 오해의 깊어짐으로 좌절에 빠지나, 단정순의 딸 중의 하나인 아주를 만나 아주의 상처를 치료하고 돌보는 중에 사랑을 하게 되나, 앞서 말한 한 여인의 농간에 의해 그 사랑하는 여인을 실수로 죽이고 만다. 아주의 죽음 장면은 비가 내리는 설정으로 되어있고, 그 마음씀과 아픔, 소봉 마음의 먹먹함이 전이되는 천룡팔부 전체 중에서 가장 비극적인 부분이다. 아주와는 달리 악독한 아자(아주의 친동생으로, 역시 단예와는 배다른 동생이다.)를 돌봐달라는 아주의 유언과 아자의 소봉에 대한 애정, 그 애정의 왜곡된 표현(소봉을 불구로 만들어 자기 품에서 돌보겠다는 아자의 욕심)으로 인해 둘은 더 깊은 운명의 굴레로 엮이고 만다. 송나라를 떠나 여진에 있다가 거란황제와의 인연으로 소봉과 아자는 거란의 주요 관직을 얻게 되고, 후에 송나라와 거란의 사이에서 소봉은 국적을 불문하고 만인을 구원하고 비극적 결말을 맺고 만다. 그 장소가 천룡팔부의 비극의 시작이 된 안문관 절벽 앞으로 소봉은 결국 자신의 어머니가 사망하고 묻힌 그 절벽에 아자, 유탄지와 함께 묻히게 된다. 소봉에게 이 안문관 절벽 앞은 세번에 걸친 운명의 장소가 되는데, 첫번째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이 되는 때이고, 두번째는 취산장에서의 상처 이후 헤어졌던 아주를 재회하는 때이고, 마지막은 송나라와 요나라의 사이를 중재하고 요나라 황제에 대한 불충을 견딜 수 없어 스스로 비극적 결정을 하는 순간이다. 비오는 밤의 아주의 죽음과 마지막 소봉의 비극은 천룡팔부가 단순한 무협소설이 아닌 극적 소설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주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신조협려의 소용녀에 버금가는 최고 미인으로 묘사되는 왕어언은 왜 출연했는지 잘 이해가 안되는 캐릭터이다. 외모는 발군이고, 능력도 최고 수준이어서 무예를 직접 하지는 못하지만 모르는 무공이 없어서 남이 하는 것을 보기만 해도 어떤 무공인지, 그 경지와 약점까지 다 알아내는 소위 걸어다니는 무예도서관이 왕어언이다. 중반까지 사촌오빠인 모용복 바라기였는데 모용복이 연나라 재건이라는 대의명분에만 빠져있고, 이를 위해 치졸한 짓도 마다하지 않아 후에는 단예의 진심을 받아들이는데, 왕어언도 단정순의 딸임이 드러나면서 단예와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단예는 단정순의 아들이 아니기에 둘은 혼인을 할 수 있으나 아직 단예 출생의 비밀을 세상에 드러낼 수는 없어 둘은 오누이로 남게 되고, 단예도 자신이 왕어언에 깊이 빠졌던 것은 왕어언 자체가 아니라 옥미인상에 투영했던 자신의 미망에 의한 것임을 깨닫고 명백한 선을 긋게 되고, 왕어언은 결국 정신이상이 된 모용복에게로 돌아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모용복만 바라보고 후에는 단예에게 갔다가 결국 모용복에게 가는 것 뿐인 왕어언을 왜 출연시킨 것이냐고… 모르겠다, 모르겠어.)

정리를 하고 보니 참 복잡하게 얽혀있는 소설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고 이런 구성을 다양한 독창성있는 인물들을 창조한 김용이 정말 신필임을 실감하게 된다.

기회가 된다면 번역이 잘 된 천룡팔부를 구해서 신필 김용이 펼쳐내는 복잡다단한 인간군상의 대하드라마를 느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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