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걷기여행 2017] 교훈 정리
- 의식주 필수 준비물은 이중점검하라. 여행 전에 리허설로 근처를 다녀오면 좋다.
– 텐트 폴대를 안가져가는 바람에 대부분의 짐들이 무용지물이 되었고, 스케쥴에 많은 차질을 가져왔다. 이 또한 여행의 묘미로 예상치못한 여행을 하게 된 것은 또다른 즐거움이지만 처음에는 멘붕에 빠졌다. 그 많은 짐들 중 폴대하나 안가져왔을 뿐인데… 🙂 - 걷기여행이면 특히 발에 신경써라
– 여기서 ‘발’이라고 하면 신발, 양말, 발톱 등 모든것을 포함함이다. 당연히 등산화면 괜찮을 줄 알고 등산화를 신고 걸었는데, 걸었던 올레길은 대부분 아스팔트 콩크리트 바닥이었고, 걸은지 몇시간 되지 않아 발 곳곳에 물집이 잡히고, 후에는 제대로 걷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첫날 신었던 양말을 보니 애초에 헌것을 가져왔는지 발바닥에 커다란 구멍이 나있었다. 그러니 발바닥에 더 마찰이 세게 전달되었던 것 같다. 발톱도 깎지 않고 그냥 와서 계속해서 양말과 신발 앞쪽에 발톱이 자극을 받아 발톱이 꺾이는 듯이 아프고 신경이 쓰였다. 결국 스위스 아미 나이프에 들어있던 작은 가위(?)로 긴 발톱을 깎아냈다. 걷기 여행에 발이 고장나니 여행의 정체성, 목적성 자체가 흔들려버린다. - 걷기여행이면 그곳의 지형 등 사전정보는 어느정도 챙겨라.
– 위의 2)와 연관이 있는데 조금만 내가 걷고자했던 코스에 대해 상세히 관심을 갖고 찾아보았으면 그곳의 길이 어떤 재질인지, 어떤 신발이 맞을지 등에 대해 판단을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뭐, 물론 이렇게 고생한번 해서 몸으로 제대로 배우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자고로 머리가 안좋으면 몸이 고생한다 하지 않았던가… 너무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도 재미가 없겠지만 어느정도는 알고가는게 좋을 것 같다. - 제주 올레가 스웨덴 쿵스레덴보다 편할거라는 선입견은 버려라.
– 어느틈엔가 자만하고 있었다. 스웨덴 쿵스레덴에서 열흘이 넘는 기간동안 혼자서 걸었었는데 우리나라 제주도에서 4박5일 걷는게 뭐 대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 경험에 의하면 제주 올레가 스웨덴 쿵스레덴보다 결코 쉽지 않았다. 스웨덴 쿵스레덴에서도 발이 부르트고 물집이 잡히고,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어느 트레커는 발 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지만 비상상황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일반적인 상황에서 제주가 훨씬 걷기 힘들었다. 시기도 한 여름이었고, 비도 오고, 비가 그친 후에 햇빛도 땡볕이었고, 기온도 높고… 산이 높지 않다고 얕보면 안되는 것처럼 어디를 갈때에도 겸손한 마음을 잊지 말자. - 거리를 자신하지 말라
평소 맨몸으로 걸을때 시속 6km가 나온다고 걷기 여행을 할때에도 그 속도가 나올거라고 생각하지 말자. 그리고 운동을 위해 죽자고 걷는 것과 주변을 돌아보고 감상하며 여유자적하게 걷는 걷기 여행은 그 속도 자체가 달라야한다. 그리고 길이 어떤 길인지, 등에 맨 짐의 무게, 카메라로 사진 찍기 등에 따라 속도는 아주 많이 달라질 수 있고 하루에 걸을 수 있는 거리는 처음에 생각한 것보다 많이 차이날 수가 있다. - 가벼울수록 즐겁다
배낭에 든 짐의 무게가 인생의 욕심의 양이라고 했던가? 이것도 필요할 것 같고, 저것도 필요할 것 같지만 막상 가보면 대부분은 옵션이다. 몇번 이런 여행을 가봐서 이제는 안그럴만도 한데 아직도 욕심이 과하다. 가만히 살펴보면 코펠을 두개나 가져갔는데 MSR 리액터까지 해서 결국 코펠은 세개인 셈이었다. 시에라컵도 2개나 가져갔는데 정작 쓴 적은 거의 없다. (그냥 코펠로 먹었다.) 쌀, 라면, 번데기, 스팸 등 집에서부터 바리바리 싸가지고 갔는데 거의 제대로 먹지도 않았다. 게다가 제주는 오지가 아니어서 편의점에서 얼마든지 살 수가 있고, 제주에서 제주 토속 음식을 먹는 것도 제주 여행의 큰 재미이니 그렇게 여행을 하면 식재료도 많이 필요가 없었는데 너무 많이 가져갔다. 그 무게는 고스란히 나의 몫이었고 내 어깨와 발의 부담으로 돌아왔다. 걷기 여행은 가벼울 수록 즐겁다. - 걷기여행이어도 걷기만 해서는 즐겁지않다.
걷기 자체가 목적일 수도 있겠지만, 이번 여행에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걷고 나서 쉬는 순간들이었고, 금릉 해변에서 하늘을 지붕 삼고, 바다를 바닥 삼아 대자로 누워 파도에 몸을 맡겼던 순간이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고행자처럼 무거운 배낭을 메고 더운 태양아래 부르튼 발을 질질 끌며 계속 걷고나면 무슨 큰 깨달음이 다가올지는 모르겠으나 지나는 길에 해변이 있으면 배낭을 내려놓고, 일정을 수정해서라도 수영을 즐길 줄 아는 것이 더 깨달음에 가깝지 않나 싶다. 여행에는 답이 없고, 여행에 한가지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고, 처음 계획한대로 여행이 진행되어야만 목적한 여행을 달성한 것은 아니다. 언제나 예외는 있고, 예상치 못한 변화는 여행의 큰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 비상약은 필수다
소화제, 밴드, 연고, 모기약 등은 필수다. 더 큰일이 벌어지면 약국이나 병원을 가야겠지만 아주 기본적인 비상약은 챙겨서 급한 상황은 해결할 수 있어야한다. 참고로 제주도에는 약국도 지척에 있지 않다. 수도권에는 눈만 돌리면 병원, 약국이 여러곳이 있지만… - 지인이나 비상 연락망은 꼭 챙겨라
쓸 일이 없을 수도 있겠고 없어야하겠지만 여행지의 지인이 살면 그들의 연락처 등을 미리 확보해놓고, 여행전에 미리 연락을 하는게 좋다. 주요 연락처(해외이면 대사관 등 관공서)는 미리 확보해놓는게 좋다. - 제주는 오지가 아니다
스웨덴 쿵스레덴은 완전 오지로써 전화도 터지지 않는다. 따라서 모든 것을내 배낭안에 다 가져가야했다. 하지만 제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섬으로 국제도시로 발전하고 있다. 결코 오지가 아니다. 특히 올레길을 걷는다면 더더욱 오지와는 거리가 멀고 주변에 펜션, 카페, 게스트하우스, 상점, 식당, 편의점 등이 얼마든지 있다. 모든 것은 배낭안에 다 가져갈 필요가 없다. 필요하면 그때그때 사서 활용하면 된다. - 올레길 표시는 눈에 잘 안띄기도 한다.
올레길이라고 전용 카펫이 깔려있는 것이 아니다. 원래 있던 길(새로 닦은 길도 있겠지만)을 올레길이라고 이름 붙이고 리본 등을 달아 올레길 갈림길을 표시한 것이다. 나무 가지나 담벼락 등에 리본 하나 붙인 경우도 있고, 페인트로 칠을 한 곳도 있다. 적어도 수십미터에 하나씩은 표시가 꼭 있다. 아니면 갈림길에는 꼭 있다. 갈림길인데 올레길 표시가 안보인다면 길을 잘 못 든 것이다. 지도를 펴서 위치를 확인하고 진행하자. - 마음에 막연한 불안감이 있다면 다시 살펴보라
이성보다 때로는 정확한 감성과 본능(?). 여행 전에 막연한 불안함이 있었는데 그 정체는 주요 준비물 (텐트 폴대)를 놓고 온 것에 기인하였다. 고생으로 점철될 여행을 예고하는 불안인지도 모르겠다. 여행이 잘 마무리되어 다행이지만 방만한 여행은 실수와 고생, 후회만 남을 수도 있다. 마음이 주는 교훈을 잘 새기자. -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첫날 텐트 폴대를 놓고 왔음을 인식하고 어떻게 1박을 해야할까 하고 고민하며 걷고 있는데, 점차 바람은 세게 불고, 하늘은 어두워지며 바로 비가 내릴 것 같았는데 바로 눈 앞에 24시간 찜질방 간판이 보였다. 딱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오늘은 이곳이다 싶어 그 찜질방에서 1박을 했다. 둘째날은 곽지과물 해변에서 이러저러하게 텐트를 억지로 세우고 그 안에서 1박을 했다. 셋째날 발바닥의 부상으로 걷기 여행의 한계에 도달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까 exit plan을 짜고 있을때 눌치재 쥔장들로 부터 홀연히 전화가 와서 그 이후로 함께 어울리고 눌치재에서 발 치료와 휴식을 하며 기력을 회복했다. 어찌보면 별 것 아닌 것들이지만 처음 목표했던 여행 계획에 차질이 생기며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을 하던 중에 절묘하게 솟아날 구멍이 생긴 사례들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니 염려나 걱정은 저 멀리 날려버리고 여행을 유유자적하게 즐기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