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모방범 (미야베 미유키)
2018년 1월 20일 완독 (전 3권)
미야베 미유키 여사(일명 미미 여사)의 명성은 익히 북스피어 (http://booksfear.com)를 통해 알고 있었으나 작품을 접한 것은 작년 말에 구입해서 읽은 ‘신이 없는 달‘이 유일했다.
사실 신이 없는 달은 별 감흥이 없었다. 독서력이 지금보다 더 많이 떨어져서 그런지 (지금도 그렇지만…) 어쨌든 잘 읽히지도 않고, 읽어도 기억도 잘 안나고, 별 재미도 없었다.
하지만 이걸로 미미 여사를 판단할 수는 없겠다 싶어서 대표작을 구입했다. 그게 바로 ‘모방범’ 세트
양은 꽤 된다.
1권이 526페이지, 2권은 501페이지, 3권은 499페이지. 3권 합해서 도합 대략 1,500 페이지의 장편이다.
결론은 얘기하면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지척!)
사실 추리 소설은 많이 접한 장르가 아니고 작년부터 독서에 좀 매진을 하면서 추리소설을 좀 읽고 있는데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과 함께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사실 제목이 좀 의아했다. 왜 ‘모방범’이지? (그 이유는 거의 책 마지막에 가면 밝혀진다.)
구성에서 참신했던 점은 대부분 추리소설이 범인이 누구인지 밝히는 구조인데 이 소설은 누가 범인인지는 일찌감치 알려주고 그 범인이 어떻게 되는지도 알려준다.
사실 난 그게 나중의 반전을 위한 거짓 장치인가 싶었다. (죽은 줄 알았지? 사실은 아니지롱~~ 다른 사람으로 바꿔치기 해놨지롱~~ 뭐 이런 것?)
책을 읽으며 그때그때 기록했던 것을 이곳에 옮겨보자.
- 미미 여사야 말로 싸이코가 아닐까? (싸이코가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싸이코 심리를 정확히 알 수 있지?)
- 가즈아키의 반전이 있을까? (어리숙해보이지만 실제로는 천재에 버금가는 실력을 감추고 나중에 짠! 하고 천재를 능가해버리는 반전?)
- 결과를 미리 말해주는 것은 유감. (누구는 잠시 후 죽음! 이런 식으로 결과를 알려줌)
- 오자가 몇 보임
- 다카이 가즈아키의 목에 있는 주사자국과 멍이 크다고 묘사되는데 그게 활용되지 않음 (결정적 증거가 될 것 같은데…)
- 경찰이 의심하게 된 근거는? (아이가 주운 휴대폰이 결국 경찰에 공유되었나?)
- 요즘처럼 CCTV가 많고 network으로 전세계가 실시간으로 연결되어있는 현대에는 그런 범죄는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요즘 세대들은 이 책을 읽으며 더 이해가 안될수도… 아니 휴대폰으로 전화했으면 어디서 전화했는지 바로 알 수 있는데? 라며…)
창과 방패와 같은 천재들의 대결을 은연 중에 기대했었는데 그런 구도는 없다. (이런 구도로 손에 땀이 나도록 짜릿했던 것은 벌써 10년도 훨씬 전에 본 데쓰노트이다.)
용의자 X의 헌신에서도 천재들이 나오는데 기대만큼 짜릿하지 않아서 좀 실망이었다.
하지만 ‘모방범’에서 천재는 아니지만 막판에 그 르뽀 작가 아주머니의 한방은 천재에 버금가는 멋진 한 수였다.
사실 범인이 누구인지는 작가가 스스로 일찌감치 밝혀주었고, 그 범인을 어떤 식으로 세상에 공개하느냐가 관건이었는데 기대에 부합하게 멋진 방식으로 드러냈다.
읽으면서 그런 뇌에 ‘병’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지 않아도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뇌에 병이 있어 주위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 남의 아픔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
뇌 1.4킬로그램의 사용법에서도 나왔듯이 눈이 ‘기능’적으로는 정상이나 그 눈을 관장하는 뇌 기능의 문제로 제대로 물체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상정이 나와서 인상깊었다. (가즈아키)
그들은 애초부터 그렇게 인식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모두가, 항상 그렇게 인식하는 줄 알고있을 것이다. 자기만 그렇다는 것을 모르므로 도움을 요청할 생각 자체를 할 수가 없다. 비극이다.
1.4킬로그램의 사용법 책에서도 이와 비슷한 ‘리키’의 사례가 나온다.
리키의 시력과 청력은 정상이었으며 인지 능력은 보통 이상이었다. … … 단순히 정규수업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녀는 학습장애아 학급에 배치되었다.
리키는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다. 때때로 모든 사람들과 사물들이 아주 멀리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폐쇄된 박스 안에 들어가 작은 구멍을 통해 사물을 보는 것처럼 느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열세 살 때 정신병원에 들어갔다. 경미한 자폐증 증상에다 자칫하면 정신분열증이 될 수도 있다는 진단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녀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끔찍하지만 당시 진단은 곧 운명이었다. … … 10년 동안 리키는 정신병원을 들락날락거렸다. 누구도 무엇이 문제인지 말해주지 않자, 그녀는 극심한 좌절을 겪었다.
리키는 스물세 살 무렵 검안사 멜빈 캐플런을 찾아갔다. 그는 단순한 시력만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 시력이 두뇌와 함께 작동하는지 알고 있는 전문가다. 그녀의 표준시력검사를 해보니 양쪽 눈 모두 거의 완벽에 가까운 약 0.7이었다. 하지만 리키는 종종 사고를 당하거나 넘어지곤 했다. 좋은 시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쉽게 피할 수 있는 물체에 걸려 넘어지기 때문이다.
캐플런은 리키에게 물체에 집중하라고 했다. 그녀는 1분가냥 쳐다보더니 시선을 돌렸다. ”뭔가를 쳐다보면 이미지가 얼마나 오래 가나요?”
리키는 당황했다.
”이미지가 그대로 있나요, 아니면 사라지나요?” 캐플런은 물었다.
”머물러 있어요. 그러니까 이미지가 그대로 있게끔 제가 애들 쓰죠.”
”음, 1분 정도 당신을 쳐다보면 당신은 사라지기 시작해요. 하지만 저는 안간힘을 써서 가능한 오래 당신의 이미지를 유지하려고 해요.”
”방안의 다른 물건들은 어떤가요?”
”처음에 물건들과 당신이 보여요. 그러다 당신을 보려고 더욱 집중할수록, 주변 물건들은 점점 희미해져요. 나중엔 전혀 안보이죠.”
캐플런은 놀라워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다 다 그렇게 보이지 않나요?” 리키가 물었다.
”세상에, 리키!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했던거니?”
”아닌가요?”
일본 소설은 많이 읽지 않았고, 읽기가 좀 힘들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사람 이름을 기억하고 구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름에 ‘끼, 까, 꼬’ 등이 들어가 그 이름이 그 이름 같고, 이름도 길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성과 이름을 바꿔가면서 사람을 지칭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홍길동이면 홍길동이라고 부르던지, 길동이라고 부르지, 길동이라고 불렀다가 갑자기 홍으로 부르지는 않는다.
일본 이름은 우리나라처럼 성과 이름이 짧지 않아서 가뜩이나 기억하기도 어려운데 종종 성과 이름을 혼용해서 쓴다.
가령 구리하시 히로미를 히로미로 지칭하다가 어느순간 그냥 구리하시로 언급하는 것이다. 그러면 구리하시가 누구지? 라며 쉽게 연결이 되지 않는다… 쩝…
그래서 일본소설은 읽으며 인물이 나오면 간단히 인물사전을 만들어놓고 그걸 보며 읽으면 많은 도움이 된다. (물론 일본소설 뿐만이 아닌 다른 언어/국가 소설도 마찬가지지만 일본 소설은 필수이다.)
이 ‘모방범’으로 미미여사의 진가를 좀 접해보았는데 그녀의 대표작들이 또 있으니 차차로 접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