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걷기여행 2017] 1일차 (제주공항 -> 도두봉 전)
날짜: 2017년 7월 10일 (월요일)
여행이 주는 느낌은 복잡 미묘하다.
설레이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하고, 기대도 되고, 우려도 되고 이 여러 복잡미묘한 기분이 여행의 묘미이다.
여행 중에 가장 설레이고 기쁠 때는 집을 나와 공항으로 가는 동안이라 생각한다. 🙂
비가 안오다가 버스 도착하기 5분 전부터 비가 세차게 쏟아져 막판에 흠뻑 젖고 말았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버스안에 손님은 별로 없었고 배낭을 갖고 차에 탔다.
원래 비행기는 2시 35분 출발이었으나 날씨 때문인지 3시로 연기되었다가, 다시 3시 45분으로, 다시 4시로 연기되었다.
김포 공항은 내부 리모델링 관계로 좀 어수선했고, 손님들도 많아 매우 복잡했다.
雨神(비의 신)이 제주를 가는데 비 걱정이 안될 수가 없다. 그것도 그냥 가는 것도 아니고 텐트를 갖고 가는 배낭여행인데… 물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게스트하우스나 찜질방 등에 묵을 예정이지만…
4시에 탑승을 했고, 약 1시간을 날아 무사히 제주 공항에 도착했다.
김포공항에서 배낭을 맡길 때도 그렇고, 지금 배낭을 찾을 때도 그렇고 제주도에는 나처럼 배낭여행을 하는 사람이 꽤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런 사람은 전혀 없다. 대부분 여행용 수트케이스를 가져왔고 나처럼 등산배낭은 커녕 간단한 배낭만으로 온 사람도 없다. 요즘 걷기여행자가 별로 없나? 걷기에 너무 덥고 장마 시즌이라 때가 아닌가? 힝…
일정 내내 나처럼 무거운 배낭을 메고 길을 걷는 사람은 한명도 보지 못했다. 🙂
김포에는 비가 많이 내렸는데, 제주는 날씨가 좋다.
첫째날의 목적지는 이호테우 해변이다. 2015년에 아들과 배낭여행 왔을때 첫날 묵었던 곳으로 야영장도 있어 공항에서 거리상으로나 시설상으로나 딱 맞다고 생각했다.
코스는 여러 코스가 있는데, 전에 아들과 갔을때에는 공항 바로 옆을 지나쳐가는 최단코스(약 6km)로 갔고 이번에는 올레코스를 따라 해안도로를 길게 걸어갈 생각이다. (약 10km)
본래 예정대로 비행기가 2시 35분에 출발했으면 시간이 넉넉했을텐데 출발 지연으로 인해 제주공항에 도착해서 배낭 찾고 출발한 시간이 오후 5시 40분 경으로 꽤 시간이 지체되었다.
배낭을 들어 어깨에 메고 허리끈을 단단히 묶고 신발 끈도 단단히 메고 멋진 여행을 만들 것을 스스로 다짐하며 걷기를 시작한다! 참고로 배낭을 수하물로 맡길 때 무게를 재어보니 18.5kg이었다. 제주공항 내 정수기에서 물 1리터를 담았으니 이제 19.5kg이 될 것이다. 뭐, 완전군장이네. 🙂
걷기 여행의 매력은 한발한발 느긋하게 걸음에 있다. 걸으며 주위를 둘러 풍경을 보기도 하고, 바람을 만끽하기도 하고, 걸었던 곳을 뒤돌아 다시 바라볼 수도 있다.
지금 걷는 길은 올레 17코스로 이호테우까지 약 10km 떨어져있다.
느긋하게 걷지만 조금씩 마음이 급해진다. 출발 당시에는 날씨가 좋았는데 구름이 조금씩 짙어지고, 바람이 강하게 불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잠시 후면 해가 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별로 걱정은 하지 않았다. 꼭 이호테우까지 가지 않더라도 가다가 적당한 곳이 있으면 그곳에 텐트를 치고 하루 묵으면 되기 때문이다. 제주는 해변에 정자가 많아서 그곳에 간단히 텐트를 치고 자면 될거라 생각했다. 무겁지만 텐트를 갖고 다니는 여행의 묘미, 장점 중의 하나가 숙박의 자유로움이 아닌가…
근데 집에서 출발할때부터 내 마음에 있던 이 원인모를 불안감은 무엇인데 아직도 해소가 안되어있을까…. 이 무엇일까…???
걸으면 발바닥에 자극이 되어 두뇌회전이 빨라진단다.
걷다가 ‘유레카’를 외쳤다. 아르키메데스는 환희의 유레카였지만 나는 경악의 유레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텐트를 지지하는 폴대를 안가져온 것 같다. 아침에 짐을 싸면서 그걸 넣은 기억이 없다. 배낭 아래쪽에 매어져있는 텐트안에 보통 폴대를 같이 넣지는 않는다. 폴대는 보통 배낭 바깥쪽 주머니에 별도로 넣는데 그걸 넣은 기억이 없다. 발은 계속 걸으면서 아침에 짐을 챙기고 쌀 때의 기억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어 확인해본다. 보통 나의 신중함을 믿는데, 이런 경우 나의 기억도 믿는다. 이 경우는 나의 기억력이 신중함을 이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폴대를 안가져왔을 확률은 99%가 넘는다. 하~~ 이를 어쩐다…
혹시라도 가져왔을 가능성이 50% 정도 된다면 발을 멈추고 배낭을 내려 짐을 풀러 확인을 할텐데 그걸 가능성이 없음을 알기에 그냥 계속 걸었다. 뭐, 없는 걸 어쩌겠는가…?
그러면서도 풍경은 계속 스쳐지나간다.
이곳 제주 올레 17코스 해안도로는 전에 2015년에 가족 여행을 왔을때 아내가 검색한 식당을 가기 위해 지났었고 당시 해안 경치가 너무도 멋있어서 인상이 깊이 남았었다. 이번에 이 코스를 걸은 것은 당시의 인상이 크게 작용했다.
전에는 차로 휙 지났을 뿐인데 이렇게 두 발로 천천히 걸으며 풍경을 보니 제주 북쪽 바다와 제주 특유의 현무암이 이루는 해변의 절경과 제주 카페, 작은 공원 등의 아기자기함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걸으며 오늘 잠자리를 어떻게 해야할지를 찬찬히 궁리해보았다. 선택은 여럿이 있었다.
- 갖고 온 등산스틱을 지지대 삼아 끈으로 연결해서 텐트를 조금이나마 세워서 친다.
- 해변에 있는 휴게 정자 기둥에 끈을 묶어 텐트를 지지해 세운다.
- 가다가 적당한 게스트 하우스나 찜질방이 있으면 그곳에서 잔다.
나보다 며칠 전에 제주도 서귀포로 놀러온 회사 동료가 있어 날씨를 물어보니 좀전까지 날씨가 괜찮았는데 현재는 비가 내리고 바람이 세차게 분다고 한다. 하늘을 보니 남쪽인 서귀포에서 북쪽인 제주시 쪽으로 비바람이 올라오는 것 같다.
비행기로 가져올 수 없는 부탄가스도 사야하는데 이 근처 편의점에서는 팔지를 않는다. 전에 이호테우 해변 근처 매점에서는 팔았는데 그 근처에서 사야겠다.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맘을 편하게 먹고 걷는데 저기 앞에 도두봉이 보이고 그 못미쳐서 마침 찜질방이 보인다.
올레 17코스가 도두봉도 올라서 가는 것인데 현재 날씨, 시간 (19시 40분) 등으로 보았을때 오늘 일정은 이만 마무리하고, 이곳에서 묵는게 가장 좋아보여서 욕심을 접고 찜질방으로 들어갔다. (도두해수파크)
큰 배낭과 카메라 등은 프런트에서 보관해주었고, 휴대폰, 지갑, 옷가지만 챙겨서 들어갔다.
요금은 성인 기준 사우나만은 7,000원, 찜질방 포함은 9,000원, 불가마 포함은 10,000원이다.
사실 이런 정보는 잘 몰랐고 그냥 찜질방 한명이요~ 라고 얘기해서 9,000원이라길래 해당 금액 내고 들어갔다가 나중에 안 것이다. 안에 보니 찜질방 내 패션이 반팔에 반바지 입고 있는 사람과 긴팔에 긴바지를 입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뭐지? 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찜질방과 불가마 손님 구분 패션이었다.
이 초여름에 약 2시간을 거의 20kg 배낭을 메고 걸었더니 온몸에 땀이 범벅이다.
배낭을 풀고 맨 몸으로 다니니 날아갈 것만 같다.
땀에 절은 옷을 벗고 시원한 해수탕을 포함하여 냉온탕을 왕래하고, 건식, 습식 사우나를 하니 천국이 따로 없다.
사우나 시설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는데 날이 어두워지자 비가 세차게 내리고 바람이 매우 강하게 불었다.
어두운 바다속에 등을 환하게 밝힌 한치잡이 배들이 여러대 떠있었다.
어두워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하는 사우나는 너무도 상쾌했다.
이런 우연이 여행이 주는 또하나의 큰 즐거움일 것이다.
사우나 후에 찜질방으로 가 매트를 깔고 누워 하루를 정리하다가 곤히 잠이 들었다.
이렇게 제주 배낭 걷기 여행 1일차가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