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걷기여행 2017] 2일차 (도두봉 전 -> 곽지과물해변) (1/2)
날짜: 2017년 7월 11일 (화요일)
밤에 찜질방에서 잠을 잔 것은 처음이었는데 나름 편안했다.
바닥에는 매트를 하나 깔고, 온도도 적당해서 이불은 필요하지 않았고, 자리 옆에 콘센트가 있어서 휴대폰을 충전하고, 밤이 되니 불도 꺼졌고, 밤에 떠드는 다른 손님도 없어서 아주 개운하게 잘 자고 새벽에 일어났다.
다시 어제의 그 해수 사우나로 가서 새벽 사우나를 즐겼다. (아~~ 너무 개운했어~~)
밖을 보니 밤새 비가 매우 많이 내린 듯 했고, 아직도 비가 세차게 내리고 바람도 꽤 세게 불고 있었다. 오늘 걸을 수 있으려나… 라는 우려가 좀 될 정도였다.
생각해보니 어제 저녁을 제대로 먹지 않았다. 올레길을 걷다가 편의점에 들러 진한 초코우유를 마신게 전부였다. 너무 피곤했는지 시장기도 별로 없었고 그냥 잘 잤다. 하지만 오늘도 걸으려면 뭐라도 먹어야한다. 텐트치고 잤으면 배낭안에 쌀, 스팸, 라면, 참치, 번데기 등 식사거리가 있어 해먹었을텐데 이곳에서 그럴수는 없고 찜질방 안의 식당은 이 시간에는 영업을 하지 않는다.
6시 경에는 비가 세차게 내리더니 6시 30분 경에는 비가 잦아들었고 하늘의 구름이 많이 옅어져서 많은 비가 내릴 것 같지 않아 출발하기로 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협재해변이다. 바로 앞에 비양도가 있고 옥빛 바다로 유명한 곳… 2015년 가족 여행 때 즐겁게 가족 해수욕을 했던 추억이 서린 곳이다.
해수파크를 나오니 바로 도두봉이 반긴다. 바로 옆에 있는 절 장안사를 거쳐 도두봉에 올라간다. 법당 안에 들어가서 108배를 할까 했지만 배낭 멘지 얼마안되어 다시 내렸다 올리기가 귀찮았다. 🙂
도두봉은 높지 않아 조금만 올라가면 바로 정상이 나온다. 제주도 섬의 머리에 해당한다고 도두봉이란다. 높지는 않아도 정상에 오르면 사방이 훤히 보여 전망이 좋다. 텐트 폴대를 가져왔다면 도두봉 정상에서 야영을 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호테우 해변에는 무료 야영장이 있어 텐트가 많이 쳐져 있었다. 지속적으로 야영을 하기 보다는 주말 이용을 위해 주중에도 텐트를 철수시키지 않고 계속 쳐있는 텐트도 많아 보였다. 그동안 비바람이 많았는지 몇몇 텐트는 무너지고 폴대가 휘거나 부러졌는데도 그냥 방치되어있는 것으로 봐서 며칠간 주인이 돌보지 않은 것 같다.
아무리 좋아도 혼자 여행하면 쓸쓸하고 고독한 것은 사실이다. 전에 가족과 함께 와서 즐겼던 곳을 와서 보면 당시의 즐거웠던 기억들이 나고 순간 뭔가 울컥한게 마음에서 느껴진다. 뭐라 말하기 힘든 묘한 기분이다.
이호테우는 2년전 아들과 함께 배낭여행으로 와서 1박을 했던 곳이다. 그때 우리가 묵었던 데크가 아직도 그대로 있었다. 당시 이곳에서 같이 밥 해먹고 수영하고 모래찜질하며 놀았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많이 커서 그때처럼 같이 배낭메고 여행가자고 하면 안할 것 같다. 다 한때의 추억인 것이다.
잠시 지나니 비가 잠잠해지고 충분히 휴식을 취해서 다시 길을 나선다. 가다가 편의점이 보여 캠핑용 가스 하나 사서 넣고 간다.
올레길에는 표시가 있는데 가끔 눈에 잘 안 띄는 곳에 있기도 하고, 주변 풍경을 보다 걷다보면 그 표시를 놓치기도 한다.
고개를 둘러보아 올레 표시가 보이지 않으면 십중팔구는 길을 잘못 든 것이다. 그럴 때 daum.net의 지도 서비스는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daum 본사가 제주에 있었어서 그런지 제주에 관한 정보는 daum이 많이 정확하고 크게 도움이 된다. (현재도 연구소는 제주에 있다.)
지도를 보니 저 붉은 표시의 17코스 그리고 이어지는 16코스는 섬 안쪽으로 들어와 돌아가는 길이라 오늘의 목적지인 협재(혹은 곽지)까지는 길게 돌아가는 길이고 대원암 정자에서 바라본 해안선이 너무도 예뻐서 그냥 해안선 따라 걸었다.
쿵스레덴을 걸을 때에도 발이 부르터서 벗겨지고 후에 발톱도 빠지곤 했지만 그건 여행 중후반의 일이었고 이렇게 처음부터 걷기에 힘들지 않았는데 이번에 제주를 걸으면서는 발바닥이 너무 빨리 아파왔다.
그 이유로 아스팔트 길이라는 것과 등산화, 그리고 무거운 짐을 들수 있을 것이다.
등산화는 흙, 나무뿌리, 돌멩이, 바위 등이 많은 산을 타기에 적합한 신발이지 이런 아스팔트길을 걷기에 적합한 신발이 아니다. 등산스틱을 가져왔지만 딱딱한 아스팔트길을 틱틱 찍으면서 걷기는 알맞지 않을 것 같아 스틱을 이용하지 않았었다. 따라서 20kg이 되는 배낭의 무게와 내 몸무게의 합은 두 발바닥으로 고스란히 쏠릴 것이고 언제나 똑같은 평평한 아스팔트 바닥과의 마찰로 발바닥은 특정 부위만 지속적으로 마찰을 받게 될 것이다. 그 마찰을 받는 부분이 물집이 생기고 벗겨지게 되는 것이다.
어제 첫날은 괜찮았는데 오늘은 발바닥이 많이 아프다. 물도 떨어졌고 점심시간도 가까이 된 것 같아 쉴 곳을 찾는데 저 앞에 자그마한 수퍼가 보인다. 반갑다.
맛있게 식사를 하니 기운이 난다. 쉬다가 양말을 벗고 발바닥을 보니 물집이 커다랗게 잡혀있다. 이러면 아파서 걷기가 힘들다. 뾰족한 핀으로 물집을 터뜨려 그 안의 물을 뺀다. 양쪽 발 모두 크고 작게 물집이 잡혀오고 있다. 설치하지도 못하는 텐트, 이용하지도 못하는 침낭, 그로인해 활용하지 못하는 버너, 코펠, 쌀, 반찬 등을 무겁게 짊어지고 다니는 내가 너무도 미련해보인다. 휴… 너무 오만하고 방만했다. 올레길이 어떤 길인지, 사전에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 등을 조금 유념해보았으면 이렇게 힘들게 다니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마음속으로 다짐해본다. 다시 올레길을 걸으러 올때에는 이런 짐들 다 필요없이 조그마한 배낭에 가벼운 옷가지만 싸서 물이나 간식 등은 편의점에서 보충하고 잠은 게스트하우스나 찜질방에서 자고, 운동화는 워킹화를 신고 오겠다고…
(후에 이 다짐을 지킬지 또 이렇게 텐트를 고집할지는 봐야겠다. 🙂 )
이제 점심도 먹었고 기운 차려서 애월 해안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