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 산맥 필사 (2018-02-28) – #9
필사도 독서의 한 종류이기는 한데, 나에게 있어 필사는 내용 파악은 잘 안되는 것 같다. 어쩌면 내가 글씨를 개선하려는 목적으로 필사를 해서인지는 모르겠는데, 아직은 내용보다는 글씨에 더 집중하고 따라서 필사를 했어도 내용은 머리에 잘 남아있지 않다.
언제까지 진행한 원고지 매수, 책 페이지에 연연할지는 모르겠는데, 이렇게 진도 나가는게 재미있기는 하다.
필사를 하며 신기한게 글자 하나하나를 쓸 때마다 마음에 드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그렇게 원고지 한 매를 다 쓰고 원고지 전체를 보면 나름 볼만하다고 마음에 흡족함이 드는 것이다.
몇번 언급했지만 똑같은 원고지, 만년필, 잉크, 장소이지만 글씨가 달라진다. 어떤 날은 기분 좋게 잘 써지는 날이 있고, 영 글씨가 이상하게 되는 날도 있다.
그럴때는 만년필을 바꿔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고, 잉크를 바꿔보는 것도 좋다. (원고지는 진행 중이니 바꾸기가 어렵다. 원고지 한 권을 다 쓰면 바꿀 수 있어도…)
혹은 만년필 뚜껑을 덮고 쓰는 것과 빼고 쓰는 것에 따라서도 느낌과 글씨가 달라진다.
현재 쓰고 있는 만년필 중에 글씨가 가장 잘 써지는 것은 아내가 전에 준 만년필이다. 아내도 누군가로부터 선물받은 것이라고 하던데 브랜드가 어디것인지는 모르겠다. 아주 세밀하게 잉크가 나오는 것이 마음 먹은데로(?) 글씨가 써져서 기분이 좋다. 펠리칸은 그보다 약간 굵게 나오고 슥슥 미끄러지듯이 써지는게 그립감도 좋고 아내의 만년필과는 다른 의미로 자주 손이 간다. (값도 값이니 자주 쓰는게 이득이다.) 라미는 그립감이 별로 안좋아서 손이 자주 안간다.
펠리칸은 잉크를 채워서 쓰고 있고, 나머지 둘은 펜촉에 잉크를 묻혀서 쓰고 있다. 이렇게 해도 잉크를 꽤 머금고 있는지 원고지 10장은 거뜬히 쓴다. 이것도 참 신통방통하다.
필사는 좋은 점이 많은 것 같다.
-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가지에 집중한다.
- 글씨를 쓰며 어렸을 적 추억에 잠기기도 한다.
- 글씨를 똑바로 쓰기 위해 마음도 자세도 바로 잡으려 한다.
- 손 근육을 세밀하게 쓰고 훈련이 된다.
- (나는 잘 안되지만) 필사도 독서다. (철저히 읽힌다는 분들도 있다.)
- 두뇌 자극이 되어 치매 예방이 될 것이다.
장인어른께도 필사를 권해드렸고, 노트와 펜을 구입하셔서 조금씩나마나 쓰고 계신다 한다. 하하하.
예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것인데, 나이를 먹으며 취미도, 취향도 조금씩 변해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