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새벽형 인간
제목을 쓰고 보니 새벽’형’ 인간 이라는 말이 무슨 공장에서 A타입, B타입 뽑아내는 것처럼 들려 느낌이 좀 그렇다.
어쨌든 나는 일찍 일어난다. 밤에 일찍 자지는 않는데 그래도 일찍 일어나는 편이다.
확실히 사람이 자는 시간은 어느정도 일정해야하고, 실제로도 일정하게 된다. 밤에 1시간 일찍 자면 일어날때에도 1시간 일찍 일어나고, 1시간 늦게 자면 적어도 1시간 늦게 일어나게 된다.
내가 일찍 일어나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생긴 습관이다.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면 지금은 돌아가고 안계신 할머니와 함께 안방에서 잤다.
자다보면 방에는 불이 켜져있었고 할머니는 카세트를 이용해서 불경을 작게 틀어놓고 염주를 돌리며 불경을 따라 읊조리고 계셨다.
그 소리가 귀에 거슬리지는 않았는지 칭얼대지 않고 슬그머니 눈을 떠서 할머니와 함께 그 염주를 돌리곤 했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께서 돌리시던 염주는 아주 긴 염주였고, 정확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할머니는 천알염주라고 하셨다.
그때의 시간이 대략 새벽 4시경.
그럼 나는 수면 부족이었는가? 결코 그렇지 않았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르겠으나 초등학교 때까지의 나는 초저녁부터 잠을 자기 시작했고, 때로는 저녁도 거르고 잘때도 많았다. 새벽에 그렇게 일찍 일어나니 저녁에 일찍 졸리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저녁에 일찍 자니 새벽에 일어나게 되고… 선순환이라 해야겠지.
중학교때부터 야간자율학습이 있었는데 초저녁에 자는 나로서는 밤 10시까지 안자고 버티는건 고역이었다.
어쨌든 새벽에 일어나 할머니와 함께 염주를 돌리며 불경을 같이 읊조리던 나는 아미타경, 천수경 등 불경도 꽤 많이 외워서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흥얼거리곤 했다. 그러다가 불경 읊조리는게 지루해지면 나는 책을 보았다. 당시에는 만화책은 아직 없을 때였고 주로 어린이 동화나 소설을 읽은 것 같다.
그렇게 한참을 염주도 돌리고, 불경도 따라하고, 독서를 해도 아직 아침은 오지 않는다. 생각보다 새벽 시간은 길고 새벽의 작업은 저절로 사람을 집중하게 하여 무엇을 하든 효율이 매우 높았다. 그렇게 두시간 정도가 지난 후에 나는 할머니한테 배고픔을 호소했다. 할머니는 손자를 위해 국수나 라면, 죽 등을 손수 만들어주셨다. 매우 즐거워하시지 않으셨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생긴 새벽 기상 습관은 나이를 먹으며 상급 학교로 진학하고, 사회로 나가서도 바뀌지 않았다. 잠을 자다가 의식이 돌아오면 다시 잠들지 않고 잠자리에서 일어나야한다.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아늑한 침대에서 밍기적거리고 싶은 욕구가 생겨 의식은 있더라도 침대에서 나오지 않고 그냥 뒤척일때도 있지만 대체로 침대를 벗어나 무엇이라도 한다. 어렸을 적에는 염주를 돌리고, 불경을 읊조리고 책을 보았다면 요즘은 이렇게 블로깅을 하거나 책을 본다. 내가 좋아하는 홍차와 함께…
벌써 10년 전인 2007년, 그때에도 새벽에 눈을 뜨기는 하는데 아무래도 밍기적거릴때도 있고, 책을 읽을 때도 있어 보다 규칙적으로 알차게 보낼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불현듯 ‘새벽출근’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당시 다니던 회사는 자율출근제를 실행해서 특별히 정해진 출퇴근시간은 없었다. 회사는 역삼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당시 살았던 사당에서 지하철로 출근했었다. 그래서 2007년 한해동안, 그 회사를 퇴사하기 전까지 매일 새벽 출근을 실천했었다.
집에서 5시에 나가서 부지런히 걸어 5시 20분 첫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도착하면 정확히 6시 정각이었다. 그때부터 1시간 정도를 집중해서 근무하면 사무실 청소를 해주시는 아주머니께서 오셔서 인사를 하고, 다시 2시간 정도 집중해서 근무를 하면 그때부터 한두명씩 동료들이 출근을 했다. 그렇게 혼자서 집중하는 나만의 3시간은 너무도 고농축의 농밀한 시간으로 그날 할 일의 80% 이상은 그 시간동안 모두 마무리가 가능했고, 나는 그 농밀한 시간을 만끽하며 너무도 즐겁게 보냈다. 동료들이 출근하면 인사도 하고, 커피도 한잔 하고, 담화도 나누고 하기 때문에 나만의 집중도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자율출퇴근제 였기 때문에 특별히 함께 참여할 미팅이나 업무 협의가 아니라면 일찍 퇴근해도 괜찮아서 나는 4~5시경에 퇴근했다. 그것도 충분히 초과근무를 한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새벽 시간이 나한테만 주는 농밀함을 접해보면 그 시간을 도저히 잠 같은 것에 빼앗길 수가 없다. 물론 밤에도 그런 농밀함을 느낄 수는 있겠지만 밤은 아무래도 하루 일정의 마감시간으로 몸과 마음이 피곤해서 새벽같은 신선함이 부족할 것이다. 그리고 밤 시간은 확보가 불확실하다. 여러 저녁 약속들도 있을 수 있으니까…
참고로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도 새벽 출근을 했었는데 인사팀에서 그건 너무 하는 것 아니냐고 자제를 부탁해오고 나 때문에 공식적인 출근시간의 시작을 오전 8시로 지정해버려서 지금 회사에서는 한 반년동안 새벽출근을 하다가 요즘은 안하고 있다. 🙁
나도 사람인지라 새벽에 침대를 박차고 나가는게 귀찮을 때가 있다. 그 귀찮음을 떨쳐버릴 나만의 아이디어가 생각났고, 그걸 1년도 넘게 지속하고 있다.
그 확실한 방법은 바로 ‘눈뜨면 바로 머리감기’이다.
처음에는 세수로 했었지만 아무래도 세수는 좀 간단한 작업이다 보니 효과가 적을때도 있고, 세수를 안해도 정신이 말짱할때는 그냥 오늘은 스킵하지 뭐~ 라는 때가 있어 불규칙하게 된다. 샤워를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효과는 확실하지만 부담이 되어서 에잇, 오늘은 말자~ 라고 해서 넘어간 때가 많다. 그래서 그 중간인 머리 감기로 정했는데 효과가 확실하다.
머리는 따뜻한 물로 감기 시작해서 차차로 온도를 낮춰서 마지막에는 정신나라고 찬 물로 한번 시원하게 뿌려서 마무리한다. 처음에는 눈도 못뜨고 잠에서 덜 깨 헤롱헤롱하지만 나중에는 정신이 쌩쌩해지고 상쾌한 기분이 든다. 머리를 감는데는 5분 정도 걸리고, 헤어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는데 3분 정도 걸린다. 머리를 감은 후에 바로 하는 것은 차를 우리는 것이다. 한 10분 정도 걸려 차를 우려서 내 책상 옆에 가져다 놓고 차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
보통 블로그에 올릴 간단한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한 1시간 정도 하면 몸이 살짝 삐부드해오고 그러면 자리에서 일어나 턱걸이를 한다. 이렇게 2~3턴을 돌면 아침 식사를 할 시간이 되어 식사를 하고, 출근 준비를 한다.
매일 밤마다 내일은 일어날 때 더 상쾌하게 일어나자~ 하지만 막상 아침이 되면 눈도 제대로 못 뜬다면 ‘눈뜨자마자 머리감기’ 신공으로 활기찬 아침을 맞이하기를 권해본다. 그 시간이 조금 당겨져서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나만의 새벽이 된다면 더 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뭔가 나만의 보물 비법을 공개한 것 같아 조금 아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