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구천동 인월암 인연
전에 말한 것처럼 나는 새벽형이다.
캠핑을 오면 더 일찍 일어난다. 아마도 평소보다 일찍 자고 밤새 숙면을 취하고 새벽에 새 울음소리가 깨우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의 경험에 의하면 새들도 동이 틀 무렵 일어나는지 그 즈음에 동시 다발적으로 지저귄다.
캠핑을 오면 대부분 아직 꿈나라에 있는 이른 아침에 나홀로 야영장 주변을 돌아본다.
2박 3일의 마지막 날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서 500동 이상 수용가능하다는 드넓은 덕유대 야영장 곳곳을 둘러본다.
그러다가 전날 갔었던 인월담의 인월암 표지석이 생각났다.
야영장 주변도 좋지만 무주구천동 계곡과 그 숲길이 다시 생각났고 이미 두번이나 갔지만 다시 가보자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야영장에서 인월담까지는 천천히 걸어서 15분이면 간다.
인월담에 도착해서 표지석이 가리키는데로 인월암을 향해 올라간다.
인월암은 직선거리로 400m인데 그 길이 등산로와 같은 언덕길이다.
암자 못미쳐있는 작은 물 웅덩이에서 엄청난 양의 도롱뇽알과 개구리 알을 보았다. 도롱뇽 알은 청정 1급수가 아니면 살지 못한다고 한다. (참고 링크)
그리고 나도 이번에 알았는데, 표기에 있어 잘못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도’룡’뇽이 아니라 도’롱’뇽이 맞다. (참고 링크)
암자에 도착하니 마침 마당에 스님이 나와 계셨고 나를 보시곤 미소와 함께 합장으로 인사하시곤 힘들텐데 시원하게 냉수라도 한잔 하라고 권해주신다.
감사한 마음으로 시원하게 냉수를 한사발 들이켰다. 물 맛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냉수를 마시곤 법당으로 들어갔다.
법당에는 세분의 부처님 상이 놓여져있었고 신도들이 시주한 과일과 쌀이 놓여져있었다.
향불 하나 켜고 법당 안에 섰다.
문득 요즘 하고 있는 108배를 여기서 하면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절에는 절방석이 놓여져있는데 이곳에는 매트와 천이 절방석을 대신했다. 소박하고 소탈한 암자 살림이 느껴졌다.
야영을 와서 전날에는 108배를 하지 못했다. 한달정도 아침마다 지속했는데 펑크를 낸 것이다. 처음에 33개부터 시작해서 하루에 2개씩 개수를 늘리고 있고, 이 날은 79개를 할 차례였는데 이렇게 암자에도 왔으니 108배를 다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암자까지 올라온 더워진 몸에 108배까지 하니 얼굴과 몸에 땀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108배는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았다.
하다보면 이런 저런 생각도 나고 어느 순간은 숫자만 세고 있기도 하고, 어는 순간은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기도 한다.
먼저 간 동생의 명복을 빌고, 온 가족의 건강, 행복을 기원하며 성심으로 108배를 생애 처음으로 다 해보았다.
108배를 마치고 법당을 나오려는데 벽에 붙어있는 오래된 사진이 보인다.
법당 앞의 나무와 꽃이 고와서 사진을 찍는데 스님께서 차 한잔 하라고 차를 권해주신다. (끽다거)
불감청이나 고소원이라. (감히 청할 수는 없으니 바라는 바입니다.)
스님께서는 방으로 들어가 차 한잔과 시장할테니 함께 먹으라고 바나나 다발을 내어주셨다.
마당에 있는 의자에 앉아 풍경을 보며 차를 여유있게 마시면서 스님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스님께서는 약 28년전에 출가하셨고 출가 전에 몸이 매우 안좋아 위독하셨는데, 출가하고 이렇게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욕심 버리고 불법 공부하시며 소박하게 드시고 생활하니 언제부턴가 몸이 좋아지더니 몇년 후에 병원에서 완쾌 판정을 받으셨다고 하셨다.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잘사는 사람이든, 못사는 사람이든, 사람 사는게 다 거기서 거기라고 너무 아둥바둥 할 것 없이 내려놓으며 살라고 말씀해주셨다.
머리로는 다 아는 얘기지만 실제로는 안되고, 누구나 다 아는 얘기지만 가장 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하신다. 하지만 조금씩, 하나씩 내려놓는 연습을 하면 좋아진다고 매일같이 내려놓는 연습을 하면 된다고 말씀하신다.
냉수도 마시고, 차도 마시고, 과일도 얻어먹고, 말씀도 듣다보니 시간이 한참 지나 딸랑구에게서 아빠 어디냐고, 왜 안오냐고 전화가 왔다.
스님께서는 신도께서 부처님께 시주하신 귀한 과일인데 부처님 혼자 드시는 것보다 나눠먹는게 좋은 거라며 가족들과 함께 먹으라고 법당에 들어가셔서 과일을 챙겨주셨다.
다음에 또 무주에 오면 꼭 다시 암자에 들르겠다고 말씀드렸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 그러고 싶다. 그때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뵙고 싶다.
서로 합장하며 인사를 드리고 스님과 헤어졌다.
어디에서 이렇게 과일을 많이 가져오냐고 가족들이 깜짝 놀란다.
그동안 돈돈돈 하던 절과 암자들만 보다가 소박하고 따스한 암자에서 스님의 훈훈한 법담과 공양까지 받으니 내 마음도 정화되는 듯 하다.
아침만 해도 전혀 계획에 없었는데 이렇게 발길 닿는데로 가다가 생긴 인월암과 스님과의 인연이 묘하다.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다시 뵙는 그날까지 평안하시고 꼭 성불하시길…
P.S> 인터넷을 찾아봐도 인월암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다. 이곳에서 인월암의 사진들을 더 볼 수 있다.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