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에 대한 추억, 그리고… (1)
만화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나의 만화 추억 이야기…
(아재 인증 포스팅이 될 것 같다.)
어릴 때 우리집 옆에는 가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문방구와 만화방도 같이 운영했던 것 같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마트와 서점과 문구점이 함께 갖춰진 대형복합도서쇼핑센터의 효시라고 해야할까?)
거기서 사 먹었던 10원짜리 하드는 내가 기억하는 내 생애 최초의 스스로 쇼핑 물품이었다.
50원 동전이 10원 동전보다 크기가 작아 왜 50원이 10원보다 가치가 높은지 이해가 안되어 주인 아주머니와 갑론을박을 벌였던 기억도 난다. (아주머니 죄송합니다.)
겨울이면 난로에 쫀드기를 구워 먹었던 기억도 난다.
난로 연통, 뚜껑, 몸통별로 온도와 특징이 다르기 때문에 접촉 방식을 달리하여 다양한 굽기 결과와 맛을 뽑아낼 수 있었다.
난로 뚜껑은 가장 뜨거워 태워먹기 일수였고, 난로 몸통은 일종의 후려치기 스킬로 번개불에 콩 구워먹듯이 재빨리 치고 빠져야했다.
연통은 온도가 그리 높지 않아 잘 익은 것을 지긋이 눌러 뜸들여서 제대로 골고루 익히는 마무리 완성을 위해 이용했었다.
잘 구워진 쫀드기는 울퉁불퉁 부풀어 오르고 어떤 것은 안의 끈적한 잼 같은 것이 흘러나와 입맛을 다시게 했다.
어찌보면 최근 몇년전에 유행하던 3초삽겹살의 원조가 난로쫀드기일 수도 있겠다.
쫀드기 외에, 동네 아이들의 구슬, 종이 딱지는 모두 그 가게에서 유통된 것들이다.
휴일이면 아버지와 오후에 그 가게에서 만화삼매경에 빠져있다가 저녁 먹으러 집으로 돌아갔던 기억도 난다.
나는 한글을 일찍 깨우쳤다고 하던데, 내 기억이 맞다면 나는 만화를 보면서 한글을 깨우친 것 같다.
나의 이런 기억들은 아주 어렸을 적, 아마 5~6살 기억으로 정확하지 않은 부분도 있을 것이다.
아버지도 만화를 좋아하셨다. 내가 초등학생 (당시는 국민학생)이 되었을때 언제부턴가 아버지는 소년중앙이라는 월간 만화잡지를 사주셨다. 정확한 학년은 잘 모르겠다. 왜 사주셨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사주신게 아니라 사 보신게 아닐까?
요즘 세대들은 모르겠지… 소년중앙은 한달에 한번 나오는 만화 잡지이다.
내 기억으로는 매달 20일인가 발간이 되었고, 그날이 되면 아버지가 그 책을 들고 퇴근하시기를 정말 손꼽아 기다렸다.
어쩌다가 그 날을 잊고 그 책을 안사오시면 그 아쉬움이 어찌나 컸던지…
책을 사오시면 우선 아버지께서 읽으셨다.
전체를 다 보시는 것은 아니고 좋아하시는 주요 만화 위주로 보셨을 것이다.
그렇게 보시곤 책을 내게 넘기시면 나는 또 내가 좋아하는 만화 위주로, 내가 보는 우선순위대로 만화를 보았다.
당시 기억나는 만화로 꺼벙이, 로봇 찌빠, 키다리 아저씨 등이 있고, 내게 최고의 만화는 고 이상무 화백의 ‘달려라 꼴찌‘였다.
자그마하지만 달리기는 빠른 독고탁은 투수가 되기를 원하고, 동네 정신병자 아저씨(?)의 도움을 얻어 드라이브볼, 더스트볼, 바운드볼이라는 희대의 마구를 개발하여 세계최강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정신병자 아저씨(?)는 마구를 개발하던 중에 라이벌에게 던진 미완의 마구가 데드볼이 되어 그 라이벌이 사망한 것에 죄책감을 갖고 정신이상이 생겼다. 비운의 그 라이벌이 주인공 독고탁의 아버지라는 막장 비슷한 운명의 고리 플롯도 갖고 있다.)
드라이브볼의 특징은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투수가 던지고 넘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이 S자로 크게 휜다는 것이다.
고난 끝에 드디어 마구인 드라이브볼을 성공시켜 마운드에서 타자들을 갖고 노는 장면에선 내가 주인공이 된 듯 방방 뛰며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뭔가 집에 들어오면 절대 버리는 일이 없는 우리집에 소년중앙은 한권한권 쌓여갔다.
학교 친구들에게도 우리집은 아주 인기였다. 오면 만화책을 무진장 볼 수 있었으니…
그러다가 새로운 월간 만화 잡지가 발행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버지께서는 시범삼아(?) 그 창간호를 사오셨다. 그 책의 이름은 ‘보물섬‘이었다.
(지금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보물섬이 육영재단에서 발행했고 당시 이사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었군. 음… 괜히 봤어~~ 참고로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2017년 3월 12일로 3월 10일에 박근혜는 만장일치로 파면되었다.)
보물섬은 그야말로 신천지였다.
소년중앙의 세배에 달하는 그 엄청난 두께와 다른 군더더기가 전혀 없이 만화로만 가득차있는 것이 그야말로 컬쳐쇼크였다. (소년중앙에는 만화 뿐만이 아니라 학생 체험, 공부 소개 등 여러 ‘공부’적인 요소도 꽤 있었다.)
간단히 말해 보물섬은 제대로 두꺼운 순수 만화책이었다.
보물섬에서 기억나는 만화들은 맹꽁이 서당, 아기공룡 둘리, 달려라 하니, 허명만 작가의 제 7구단 등이 있었고, 내가 가장 좋아하던 만화는 이현세 작가의 ‘고교외인부대’였다.
당시 중학생 사춘기가 슬슬 오고 삐딱, 씨크함이 왠지 멋있어보였던 나는, 이현세씨가 그리는 그 삐딱하고 인상 팍팍쓰고 제멋대로인 반항적 주인공 까치 오혜성의 모습이 멋있어서 달력 뒤에 주인공 모습을 따라 그리기도 했었다.
그런 삐딱이 까치 오혜성을 지고지순으로 사랑하는 순정파 엄지의 모습은 사춘기 소년인 나의 보호본능을 자극했고, 만화 후반에 엄지가 배신 아닌 배신(?)을 때리고, 그 오해가 제대로 풀리지도 않은 채로 엄지가 사고를 당하는 장면에선 요즘 말로 소위 멘붕이 왔었다.
마지막까지 설마~~ 설마~~ 그러다가 결국 만화가 비극으로 끝났음을 재차 확인했을땐 멘탈붕괴의 절정이었다.
어린이들 대상으로 하는 만화가 이래도 되는건지 작가와 출판사에 항의를 하고 싶었고, 그 만화의 그 해당 편을 보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할 정도로 현실부정(?)을 하고 싶었다. (소위 그 만화 보지 않은 눈 삽니다???)
소년중앙과 보물섬의 만화만 본 것은 아니고 퀴즈 응모나 애독자 엽서를 보내서 두 번 정도 당첨도 되었다. 경품은 똑순이 크리스마스 캐롤 노래 테이프와 명작 추리소설집을 받았다. 응모한 다음 달에 책이 나올때면 만화를 보기보다 당첨자 명단을 먼저 확인했고 그때 당첨자 목록에 들어있는 내 이름을 발견하곤 어찌나 신기해하고 즐거워했던지…
고교외인부대의 종료와 더불어 내게 보물섬의 재미는 반감되었고, 언제부터인가 소년중앙과 보물섬의 구독은 멈추어졌다.
집에 쌓여있는 만화책을 보고 또 보는 무한독서(?)를 하던 어느날 아버지께서 새로 창간되는 만화잡지의 정보를 얻으셔서 그걸 또 사오셨다. 아마 이상무, 이현세 작가의 신작이 들어있다는 것을 보시고 구입하신 게 아닌가 싶다.
그 새로 창간되는 만화 잡지의 이름은 그 유명한 ‘아이큐 점프‘였다. (1988년 창간)
이 글을 쓰며 검색을 해보니 아이큐 점프 창간호에 실린 만화들과 그 장면들은 네이버 블로그에 잘 정리가 되어있어 나도 다시 보며 추억이 새록새록 돋는다.
아이큐 점프는 이 초대 창간호 표지에 써 있는 것처럼 세 가지 파격적 특징이 있었다.
- 월간이 아닌 주간이다.
- 소년 대상이 아닌 청소년 대상이다.
- 가격이 1,000원으로 쌌다. (소년중앙, 보물섬이 얼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당시 아이큐점프의 가격은 이슈였던 것 같다.)
헉헉… 이것 쓰는 것 정말 힘드네…
To be continued